‘시행령 폐기’로 자사고 등 부활하면 고교체계 재편 가능성
교육감 직선제 개선·고교학점제 등 엇박자 땐 ‘갈등 뇌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지난해 8월 서울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서 수험생들이 수능 응시원서를 내고 있다(왼쪽 사진). 2016년 6월 서울 배화여고에서 학생들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다. 강윤중·서성일 기자
5년 만의 정권교체로 교육 분야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임기 후반 정시 확대로 급하게 방향을 전환했지만, 새 정부에서는 이 같은 기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현 정부에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평가에서 표집평가로 바꿨지만, 새 정부에서는 학력 전수평가가 다시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에서 전면 폐지를 예고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역시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정책을 뒤집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학력 전수평가, 정시 확대, 자사고 부활…기존 정책 손질 불가피
16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자료와 대선캠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새 정부 교육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공정성’과 ‘기회균등’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손상된 ‘학교교육 정상화’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 인재 육성’이 전략적인 목표로 꼽힌다.
윤 당선인의 교육 공약 중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대입 정시전형 확대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 비중을 확대하고 대입전형을 단순화해 불공정한 개입이 차단되는 대입제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와 예체능계 대학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 15개 주요 대학의 정시선발 비중은 40%대로, 수시와 정시 선발 비중이 8 대 2 수준인 지방권역 대학들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를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시전형 전면 폐지, 정시 100% 선발을 주장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시전형 확대 기조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 입시비리 암행어사제를 도입, 입시를 둘러싼 부정을 차단하고 비리가 적발되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 정원 감축과 같은 벌칙을 줄 방침이다.
‘성적 줄세우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학력 전수평가도 대표적인 윤 당선인의 교육 공약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교육정책을 발표하면서 “공교육의 붕괴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씨앗으로, 전반적인 학력 저하와 계층·지역에 따른 학력 격차는 인생의 기회 격차,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며 전수평가 부활을 예고했다.
현 정부에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평가에서 표집평가로 바꾼 것을 다시 뒤집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줄세우기 차원이 아닌, 학업성취도와 학력 격차를 파악해 미래 세대가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사고·외고 등 수월성 교육 축소·폐지로 가닥이 잡혔던 고교체계도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은 줄곧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등 고교 유형을 다양화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해왔다. 현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를 2025년 3월1일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시행령 폐기를 통해 원점으로 돌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밖에 학제 개편과 정치 중립 논란의 교육감 직선제 개선 공약도 언제든 대형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은 뇌관들이다. 앞서 윤 당선인은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유보통합)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보육을 공교육에 편입하는 유보통합은 유아·초등·중등·고등 정규교육 체계를 잡는 전제 조건으로, 윤 당선인은 앞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현행 6·3·3·4년 시스템 대신 새로운 학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능력·시험·수월성 중심…사교육 뇌관 건드릴까
보수 정권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 이후 다시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현장의 혼란은 어느 정도 예고된 상황이다.
특히 자사고 부활을 계기로 특목고 등 수월성 교육에 대한 인식이나 영향력이 유지·강화될 가능성이 커졌고, 학력 전수평가를 통해 ‘줄세우기’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입시·경쟁이 한층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가운데 정시전형 확대 공약은 교육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정책이다. 당장 교육 현장을 오래 지켜봐온 전문가들은 그간 고교 교육과정 정상화를 위한 교육 혁신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정시를 확대하면 상위 50% 학생이 수도권으로 다 빠져나가면서 지방대학은 모집을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고 고등학교 교육이 상당히 흔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도 “계층으로 따지면 부자와 강남에 유리해지고, 지역으로 따지면 사교육이 발달한 지역, 학교로 따지면 외고와 자사고가 유리해지는 대입 환경이 만들어진다”면서 “결국에는 가장 불공정한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와 정시 확대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고등학교를 입시기관화하는 문제를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는 수능에 나오지 않는 다양한 과목을 학생들이 선택해 수강함으로써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수능 준비에 매몰되지 않도록 대입에서 수능 의존도를 낮추는 수능·대입제도 개편 작업이 필수적인데 정시 강화로 수능 의존도를 높이는 정반대의 정책이 추진되는 형국인 셈이다.
고교학점제를 총괄하는 교육부는 아직 “달라진 것도, 정해진 것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고교학점제 순연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수능 개편 작업에 관여했던 한 교육계 인사는 “고교학점제는 입시라는 난공불락을 무너뜨리고 고등학교를 정상화시키는 트로이의 목마 같은 것”이라며 “고교학점제가 후퇴할 경우 고등학교는 다시 입시학원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윤 당선인 측은 앞으로 어떻게 고교학점제를 조율해 나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선거캠프 관계자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이 교원 수급 문제 등으로 현장에서도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시 확대를 통한 새 정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조치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2025년 고교학점제 연기는 물론 이에 연동될 2028년 ‘수능 체제 개편’까지 최종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송경원 정책위원은 “고교학점제의 4개 조건이 대입, 내신, 교원, 시설인데 교원이 많이 필요하고 시설도 지금보다 강의실이 많이 필요하다. 당장 내년부터 전면 도입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자칫하면 정시는 확대되고 고교학점제는 안 하고, 외고·자사고가 부활하면서 전국이 사교육 시장으로 변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