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의 교통을 책임진 서울교통공사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향신문이 17일 입수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를 통해서다. 문건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대목들이 있다. ‘디테일한 약점은 계속 찾아야’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 증빙’ ‘상대방 실점을 소재로 물밑 홍보’ 등이 그것들이다. 문건에 들어 있는 전략이 실행된 흔적도 있다. 교통약자인 장애인을 배려하는 데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만 여긴 것이다. 드러난 교통공사의 민낯에 당혹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대중교통은 시민의 발이다. 어떤 사람은 지하철로 생업을 위해 출퇴근하고, 누군가는 즐거운 여행길에 오른다. 학교에 가거나 쇼핑을 하고, 극장에도 간다. 좋아하는 아이돌 포스터를 보기 위해 지하철 역사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휠체어의 노인이나 장애인도 자력으로 혼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이동하지 못한다면 장애인에게 직장이나 병원, 학교는 사치품일 뿐이다. 이동권의 침해는 다른 기본권까지 제약하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서울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로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1역사 1동선’은 총 283개 역 가운데 261개 역이다. 나머지 22개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렵다. 2004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 서울시의 약속은 계속 미뤄졌다. 힘들여 휠체어로 승강장까지 가도 앞바퀴가 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10㎝를 초과하는 승차 위치는 3398개에 이른다. 일부는 간격이 20㎝에 달한다.
교통공사 측은 “직원 개인이 작성해서 올린 파일”이라고 해명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누가 이런 무개념 지시를 내렸는지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에 앞서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확대 등 이동권 보장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