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났다. 페미니스트 후보임을 한 번도 부정하지 않고 선거를 치른 심상정 전 후보가 받은 표는 2.37%였고, 그보다 적은 표차로 결과가 갈렸다. 이재명 캠프는 ‘남혐·여혐싫어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었다. 윤석열 전 후보는 성별을 갈라쳐 온 정치인 이준석을 전면 기용했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윤석열 당선인의 ‘신승’ 원인을 “20대부터 50대까지 여성표는 전멸”한 데서 찾는 분석이 나왔다(매일경제 3월10일 보도). 이재명 전 후보 측 전략 중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선거 막판 ‘추적단 불꽃’ 박지현 활동가의 기용이었다. 여론조사 공개 기간이 끝난 시점이었으나 주변의 여론이 빠르게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페미니스트 정치의 실패인가, 승리인가? 이제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정치가 무엇이며,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할 시점이 됐다고 여긴다. 심상정은 정말 페미니스트 후보였는가? 심상정은 2017년 대선에서 1호 공약으로 ‘슈퍼우먼방지법’을 내세웠다. 법안의 골자는 남성 양육자에게도 육아휴직을 의무 할당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주4일제’를 걸고 노동시간 단축 의제를 전면에 끌고 나왔다. 나는 이번의 심상정이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더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여성정책을 새롭게 내놓기는 쉽지 않다. 밖에서 나돌던 말을 제외하고 직접 캠프들의 여성정책을 검토하면, 모든 후보는 여성을 위한 공약을 마련하긴 했다. 이재명 캠프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를, 윤석열 캠프는 육아휴직과 긴급보육돌봄서비스 확대를 말했다. 양념처럼 성폭력, 성범죄 공약도 다들 끼워 넣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바로 여성정책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것 그 자체다. 여성 안전을 담보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려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혼 유자녀 여성을 1차 타깃, 그 남성 파트너를 2차 타깃으로 휴직과 노동시간 단축 중심의 지원책을 주는 정책을 민다. 여성을 ‘어떤’ 자리에 배치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모두가 직업적 성취를 최우선으로 두고, 자신의 수입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가사도우미’를 쓰며 달려가는 세계에서 일부에게 애를 낳고 ‘일·생활 양립’을 택하도록 하는 것은 여성에게도, 그 여성을 고용하는 회사에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에 청년여성 다수가 비혼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개인의 삶에서 노동시간이 차지하는 위상과 정도부터 다시 고려해야 한다. 지금 표준화된 생활양식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 왔으며 그건 바람직한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이에 ‘여성정책’으로 직접 분류되지 않은 신노동법은 좋은 페미니스트 정책이다.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은 저서 <남성됨과 정치>에서 페미니즘 정치이론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에 따르면 페미니스트가 정치이론을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선행 연구에서 여성 묘사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거나, 한 사상체계가 구현하는 세계관에서 여성이 어떻게 소외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더 나아가 정치가 남성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드러낸다. 여성‘만’ 다루는 것이 페미니스트 정치는 아니다. 언제까지 주어진 선택지만 고를 수는 없다. 판을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