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사로워지며 남쪽부터 서서히 꽃이 피어오르는 시기, 많은 음악가와 애호가들은 통영으로 향한다.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찾기 위해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과 그의 음악을 기리며, 동시대 음악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음악제다. 특히나 통영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봄날, 바닷가에 인접한 음악당에서 공연을 보고 듣는 일은 근사한 음악 경험 중 하나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처음 음악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팀프(TIMF) 앙상블을 통해서였다.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로서 서울에서 꾸준히 기획공연을 이어오는 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다 이들이 통영국제음악제의 연주단체이자 홍보대사 역할을 담당한다는 걸 알게 됐다. 팀프 앙상블의 공연을 통해 동시대 레퍼토리를 많이 접하고 배워온 터라 그들의 집과 같은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접한 뒤엔 음악제를 종종 찾았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역사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통영에서 열린 ‘윤이상 가곡의 밤’을 시작으로 이듬해 ‘통영현대음악제’가 개최되고,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그간 이 축제는 수많은 음악가가 모여드는 플랫폼으로 자리해왔다. 윤이상의 오랜 친구였던 오보이스트·작곡가 하인츠 홀리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피아니스트 최희연 등 빛나는 행보를 이어가는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또 윤이상의 정신을 기리는 축제인 만큼, 윤이상 음악과 더불어 강석희, 도시오 호소카와, 탄둔 등 아시아 음악가의 작품도 꾸준히 선보였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현대음악제가 되고, 동서양 음악문화를 잇는 가교로 자리한다는 목표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며 다양한 국내외 음악인들과 함께 무대를 꾸려왔다.
그리고 올해, 공식적으로 스무 살이 된 통영국제음악제는 작곡가 진은숙을 예술감독으로 내세우며 또 새로운 흐름을 시작해간다. 서울시향에서 10년 이상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를 기획해온 그가 올해부터 5년간, 다시 한번 기획자의 입장에서 음악을 선보이는 것이다. ‘다양성 속의 비전’이란 주제 아래 열리는 올해 축제는 예년보다 장르 면에서도, 형태 면에서도, 참여자 면에서도 한 발짝 넓어진 듯하다. 축제 개막공연의 지휘자는 핀란드의 여성 지휘자 달리아 스타솁스카이고, 상주 작곡가로 초대된 앤드루 노먼의 작품이 다수 연주되며, 상주 음악가인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가 리사이틀과 협연을 진행한다. 서양음악의 전통을 따르는 음악가들이 음악제의 든든한 핵심부를 잡아주는 가운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원일의 ‘디오니소스 로봇’, 소리꾼 이희문의 공연 등 한국 전통에서 출발하지만 동시대에 만나고 있는 공연도 중요한 축을 차지한다. 수많은 악기를 직접 제작하며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한 작곡가 해리 파치의 음악을 선보이는 앙상블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아쉽게도 한국 방문이 어려워져 취소됐다. 실제로 만나진 못했지만, 축제 라인업이 겨냥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어질 다음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작곡가 윤이상이 만든 음악에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힘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적 유산으로부터 출발한 이 음악제에서도 서로 이질적인 것, 다른 것으로 여겨지지만 충분히 한데 고루 모일 수 있는 것들이 공존한다. 현재의 음악에 배어있는 수많은 전통과 장르, 단정하고 느릿한 오래된 질서, 그리고 끊임없이 가속되어가는 동시대의 폭발적인 힘까지. 여전히 ‘페스티벌’을 실현하기 어려운 시기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무대에 모이고, 거기서 다채로운 즐거움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다양성으로부터 새로운 ‘비전’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