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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은 ‘좋은 보수’가 될 수 있을까

입력 2022.03.22 03:00

수정 2022.03.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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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윤석열 정권은 ‘좋은 보수’가 될 수 있을까

변화 수단이 없는 국가는
보존 수단이 없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교시가
보수주의 제1의 격언

그런데 국민의힘은
무얼 보존해야 할지 몰라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해
진짜 보수인지 의문

통합과 협치의 민심 외면
청와대의 용산 이전 관련
또다시 갈라치기 나서고
더 심각한 것은 독주 행태
윤석열 정권도 기대 난망

보수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필자는 열혈 진보주의자도 아니지만, 보수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한다. 진보도 당연히 바로 서야 한다. 그렇지만 보수가 바로 서는 게 우선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이제 클 만큼 커서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진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선도국가’임을 표방한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와 세계화 등 근현대 국가의 보편적인 대변동을 모두 겪고 경제 및 국방비 규모에 있어 10대 국가의 반열에 올라 선 나라이다. 그래서 진보적 가치의 소중함과 그 구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파괴보다는 보존의 틀 안에서 그리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런 현실에서 사회가 계속 잘 유지되고 재생산되려면 보수가 뛰어나야 한다. 진보의 경우 이념 중시 성향과 신념윤리가 워낙 강해 선도성은 높지만, 인간적 본성과 삶의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너무 쉽게 재단할 뿐만 아니라 보존의 가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보수 스스로 보존의 이유와 결과를 유익한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보수는 무엇을 보존하는 게 자신에게는 물론, 공동체 전체에 더 좋은지 잘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또 파괴적이지만 건설적인 진보의 본성을 냉엄한 현실에 적용해 점진적 변화의 방법을 잘 찾아내고 그것을 제대로 실행할 줄도 알아야 한다.

보수주의의 창시자 격인 에드먼드 버크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보존의 수단을 갖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던 것, 또 그 말이 보수주의의 제1의 격언이나 마찬가지이게 된 것은 바로 그런 뜻에서다. 영국 헌정체제의 보존을 가장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 자유와 평등과 정의 같은 가치의 확산을 수용했던 버크의 교시는 보수주의가 자기 태동의 이유였던 적대적 이념과 세력, 즉 혁명의 이념과 세력이었던 자유주의의 수용과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인정으로 구현되었다. 버크의 교시는 자유주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당대의 흐름이라고 보았던 민주적 독재로 인해 고사 위기에 처한 다양성과 개별성을 보존하기 위해 버크의 교시를 계승했다. 자유주의가 지배의 이념과 세력의 위상을 획득한 이후, 즉 보수의 이념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토크빌과 마찬가지로 다양성과 개별성의 보존을 중시한 존 스튜어트 밀은 사회적 자유라는 개념을 통해 이웃의 이익에 대한 고려와 자본·노동 간의 힘의 균형 그리고 분배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 그와 같은 보수의 중요성과 역할을 잘 알고 수행할 세력은 실재하는가? 특히 사회적 가치의 배분을 책임지는 정치세력 말이다. 자기 스스로 보수임을 자처하는 혹은 그리 간주되는 정치세력이 있기는 하다. 새로이 집권당의 자리에 올라서는 국민의힘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보수다운 보수인지는 의문이다. 자기 생존(선거승리)을 제외하고는 공동체 전체를 위해 무엇을 우선-혹은 꼭-보존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다. 또 진보의 건설적 측면을 현실에 적용할 의지 자체가 미약한 듯해서다.

보수는 갈라치기보다는 통합 중시

이들은 20대 대통령 선거전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내로남불 행태 등 현 집권세력의 오류와 한계를 공략하는 데는 성공했다. 즉 현 집권세력이 집값을 잡겠다고 해놓고서는 오히려 올리는 결과만을 낳았던 것, 그리고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공직자들마저 보유자산 증식 우선 풍토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효과적으로 조성해냈다. 하지만 그게 사실상 다였다. 집권세력의 약점에 대한 공격은 보수가 아니어도 그냥 야당이기만 하면 모두가 할 수 있고 실제 하는 일이다.

국민의힘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때에 비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했다. 이명박 정권은 패자도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공정사회론을 주창했다. 또 미래성장전략으로 녹색성장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행복 시대를 기치로 경제민주화 같은 진보적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 때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노동의 희생이 컸다며 정당한 보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노동계의 반대가 있어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대선 캠페인 첫 행보가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흉상에 헌화하는 것이었다. 정략적 행보였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실제 성과로 이어진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적어도 사회양극화 심화와 승자독식사회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진보의 해법마저 차용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는 지금의 국민의힘처럼 보수가 내놓고 앞장서서 세대와 젠더와 지역을 갈라치지 않았다. 보수는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공동체 보존을 제일 중요한 목표로 삼아 갈라치기보다 통합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보수정치세력의 원조 이념인 토리즘이 ‘하나의 국민’을 표방했던 이후로 보수는 마거릿 대처 정권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러했다. 시점을 더 올라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보수정치세력의 원조 격이 된 김영삼 정권에 비할 때도 작금의 국민의힘은 볼품이 없다. 김영삼 정권은 집단이기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고통분담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결국은 노동약자들의 고통전담으로 귀결되었다는 비판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규범을 강조했다.

단순비교할 사안은 아니겠으나,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후보가 얻은 득표율보다 더 높은 비율의 응답자가 전직 대통령들의 국장과 사면 등에 찬성한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한국적 보수의 정신에 대한 서사 비슷한 것’을 들려준 것에 대한 수긍 같은 것 말이다. 반면에 이번 대선에서 단지 0.73%의 차이로 승리한 것의 이유도 그런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 집권세력이 미워서 손을 들어주긴 하지만, 예전의 집권보수정당과 지도자들에 비해 턱없이 빈곤한 정치철학과 과도하게 무도한 행태에 대해서는 결코 납득할 수가 없다는 의사의 표시로 말이다.

보존 위한 변화가 집무실 이전일까

국민의힘은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권에 들어서면 달라질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일단 기대난망이다. 문재인 정권 시기 내내 그랬고, 대선 때에는 특히 그랬던 것처럼 당선 후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 결과를 보고 수많은 전문가와 다수의 국민들이 통합과 협치에 대한 민심의 요구라고 하는데도, 또다시 갈라치기에 나섰다. 청와대 용산 이전을 갖고 다시금 논란과 정쟁을 유발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옳으니 결단을 따르라며 독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해놓고서도 국민 여론조사 요구에 대해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존하기 위한 이전인지, 또 그것이 왜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조치인지 납득이 안 간다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특수부 검사처럼 속전속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청와대 이전이 제왕적 대통령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도 아니라는데도 그리한다. 막대한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등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내세운 것도 심도 있는 검토를 거쳐 나온 게 아닌 것 같은데도 그리한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처음부터 봉쇄한 셈인데, 이는 이성적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보수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위배한 것이고, 보수가 진보와 다른 첫째 이유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승리 후 일성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자고 했다. 이것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보존할 으뜸 가치인 셈이다. 좋다. 그런데 묻자. 자유의 필수조건인 평등이 취약한 상황에서, 그것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영역인 노동-교육-주거·환경-건강에서 불평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어떻게 보통사람들이 자유로운 주권자로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재벌대기업을 위시로 한 경제적 강자가 이윤을 독점하고 있는 지배구조하에서 어떻게 등가교환과 자유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가 가능하냐고. 이제는 보존을 위해 변화의 수단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스스로 벗어나자고 했던 ‘철 지난 이념’으로 전락시키는 것 아니냐고.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 설마 청와대 용산 이전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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