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의 대명사인 고대 중국 요순시대의 요임금이 백성들의 생활상을 살피려고 평민으로 꾸미고 민정 시찰에 나섰다. 큰 사거리에 이르러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우리 백성들이 살아감은 그분의 은덕 아님이 없네/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임금님의 법도를 따르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동행한 신하가 요임금을 바라보니, 요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으나 뭔가 미진한 듯 보였다. 계속 길을 걷다가 이번에는 장년의 남자가 그늘에 앉아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잔다/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내게 무엇 있으리오.”
이 노래를 듣고서야 비로소 요임금은 완전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상반되는 두 노랫말은 정부 역할에 대해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행정학 수업 때 두 노랫말을 칠판에 적어 놓고는 바람직한 정부 역할에 대해 토론해 보라고 했다.
학생 A가 두 번째 노랫말을 거론하며 말했다. “이는 결국 작은 정부가 좋은 정부임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국방이나 치안처럼 국가의 존속과 안정을 위한 역할에 집중하고, 먹고사는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챙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시장경제에서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과 정부 역할은 보완·협력 관계
학생 B가 반론을 폈다. “첫 번째 노래를 부른 아이들은 취약집단을 대표하고 두 번째 노래를 부른 장년의 남성은 경쟁력을 갖춘 집단을 상징할 것입니다. A 학우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알아서 잘할 테니, 굳이 정부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지만 시장경제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취약집단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안정된 삶을 누리도록 해줘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면, 두 번째 노랫말은 시장의 역할을 보여주고 첫 번째 노랫말은 정부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경쟁력 있는 집단이 잘살게 하는 것은 시장의 역할이며, 정부의 역할은 취약집단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 정부로는 불가능합니다. 튼튼한 복지체계를 갖춘 정부라야 합니다.”
이쯤에서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섰다. “두 학생의 말이 모두 일리 있어요. 그런데 정부의 역할을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자유시장 중심이냐 튼튼한 복지국가냐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어느 한쪽 편만 취할 필요는 없겠지요. 국민의 수요가 다양한 만큼 정부의 역할도 다양할 것입니다. 이 두 노랫말을 합쳐서 국가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하면 어떨까요. ‘남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알아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본인의 경제·사회 활동에 불편함이 없는 환경,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 동시에 자립이 어려운 취약계층에게는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
중국 고사를 인용하며 정부 역할을 멋지게 설명했다고 내심 뿌듯해하고 있는데, 학생 C가 공손하게 손을 들더니 차분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두 노랫말에서 한 가지 의미를 더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첫 번째 노랫말의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리고 두 번째 노랫말의 ‘임금의 힘이 내게 무엇 있으리오’라는 가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국민이 정부를 찾지 않더라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게 진정 바람직한 정부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발생해야 정부를 찾습니다.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굳이 정부를 찾을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니 국민이 정부를 찾지 않으려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필요한 조치를 조용히,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문제가 터지고 이를 멋지게 해결하는 쪽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그래야 정부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색을 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생색내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국민이 평안하도록 제 할 일을 해야겠지요. 물론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유능하고 부지런한, 그리고 사려 깊은 정부라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물론 그 옛날 요순시대와 비할 바 없이 크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모든 문제를 미리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생색나지 않아도 제 할 일 묵묵히 잘하기’가 바람직한 정부의 덕목이라는 것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는 감탄했다. “훌륭해요.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일리 있네요. 과연 요임금 일화가 주는 시사점으로는 그 점도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5월10일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의 방향도 바뀐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확실히 큰 시장 작은 정부였다. 복지확대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는 자연스레 작은 시장 큰 정부가 되었다. 하지만 시장과 정부 역할이 대립해야 할 이유는 없다. 둘은 충돌이 아니라 보완이고 협력 관계에 있다. 우리 사회가 잘 굴러가려면 각기 제 역할을 잘하고 함께 시너지를 내야 한다.
묵묵히 잘하는 게 바람직한 정부
한편으로는 경쟁력 갖춘 사람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정하고 역동적인 시장경제의 판을 조성하자.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에 뒤처진 사람들도 소외되지 않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도록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깔아 놓자. 이게 바로 윤석열 차기 대통령이 강조한 ‘따뜻한 보수’일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만 확실하게 해낸다면 성공한 정부가 되리라고 믿는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문제가 터지기 전에 예방하고,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노라 큰소리치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제 할 일 성실하게 해나간다면 정말 이상적인 정부 모습이 되겠다. 아니, 마지막 것은 너무 어려우니 빼자. 문제가 터져도 그럭저럭 수습해내고 큰소리친 만큼은 아니라도 준수한 성과를 보인다면, 충분히 좋은 정부의 모습이 되겠다. 곧 출범하는 윤석열호의 승객으로서 순항을 기원하며 선장과 선원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