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
미노슈 샤피크 지음·이주만 옮김|까치|324쪽|1만7500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 중심이 지탱하지 못하니. … 어떤 계시가 임박한 것이 분명하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쓴 ‘재림’의 시구로부터 책은 시작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양극화, 고령화와 기후위기 등 세계 사회가 마주하고 있지만, 애써 외면했던 문제를 가시화했다. 이제 모두가 변화를 외친다. 팬데믹 이후 세대를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문제는 지금 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돼 있고, 이 토대 위에서 사회계약을 위한 어떤 원칙이 세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저자인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를 지낸 미노슈 샤피크 영국 런던정경대(LSE) 총장은 현행 사회 체계에서 소외된 이들까지 포용할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에 소개된 몇몇 주제들은 국내에서 논의된 것이기도 하다.
책은 여성의 역할 변화와 출생률, 교육, 건강, 노동, 고령화, 세대 문제 등 부문별로 현 사회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이에 따른 새로운 사회계약의 모습을 제안한다.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닌 인류 공통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한국도 사례로 여러 번 언급된다.
한국이 법정 육아휴직 기간이 짧은 편이 아님에도 합계출생률이 0.9명으로 저조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보육 정책이 여성의 사회 진출 지원, 국가 돌봄 체계 및 사회 인식 개선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은 “북유럽의 사회계약은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한 것으로 여성 고용률이 높고, 보육 부분의 공공지원 범위가 넓고, 남성들이 무급 돌봄 노동을 상당 부분 분담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며 “한국은 지원 혜택을 확대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이 낮다”고 말한다.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은 캠페인성 운동 몇 번으로 변화하진 않는다. 한국 사회는 몇 년 전부터 청년 세대를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자녀들의 처지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 없다고 확신한다. 노동 소득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고 믿는 젊은이들은 없다. 전 세계를 휩쓴 가상통화와 주식, 부동산 투자 열풍은 이를 증명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분위기는 이런 상황에서 심화됐고,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여성의 육아휴직을 늘리는 것을 넘어서 사회복지 제도 전반의 개편과 이에 따른 시민 인식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출생률 제고는 어렵다.
책에 따르면, 2018년 프랑스를 기준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졸업한 20세 성인은 국가로부터 평균 12만유로(약 1억6000만원)의 교육비를 지원받는다. 반면, 16세에 학교를 그만둔 이의 지원금액은 6만5000유로(약 8700만원)로 대학을 졸업한 이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제도권 교육을 오래 받은 사람일수록 지원이 많은 것인데, 저자는 이를 “대단히 불평등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저자는 18세 이상이라면 누구에게나 평생 교육을 이용할 권리와 혜택을 주자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국가의 교육 재정 지원이 대학생 위주로 돼있는 것을 지적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국가장학금에 준해 자기계발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대학에 안 가는 대신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자”고 했다.
책은 이외에도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관심도가 높아진 비정규 유연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보 문제를 비롯해 고령화에 따른 돌봄과 정년 연장 문제, 기후변화에 따른 산업 구조 및 일자리 변화 등에 대해서도 분석과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계약을 고민할 때, 입문서로 적합한 책이다. 방대한 분야를 넓게 다루기 때문에 한 챕터당 논의되는 분량은 길지 않다. 다양한 학술 자료와 각국 정책의 객관적 지표 및 사례 연구 등 근거 자료를 폭넓게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