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들

입력 2022.03.26 03:00

59회를 맞은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은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 어린이책 출판 관계자가 모이는 대축제다. 2년에 한 번씩, 도서전 현장에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수상자를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세계 아동문학과 그림책의 역사는 이 상의 수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지난 3월21일에 발표된 2022년 수상자는 우리나라의 이수지 작가였다. 생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상자 발표 순간에 너도나도 탄성을 질렀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2022년을 기준으로 이수지 작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경이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림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세계의 차원을 바꾸어놓은 독보적인 작가다. 우리는 이수지 작가 덕분에 그림책이라는 작은 사각형의 무대 안쪽에 잠들어 있던 환상의 목소리를, 평면 위에서 입체적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글이 없는 그의 그림책에서 들려오는 어린이의 독백과 대화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다가오는 발소리를, 비발디의 사계를 그림을 통해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다.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경험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뛰어난 예술의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이수지는 세계의 그림책 독자가 열렬히 사랑하는 능력자다. 그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상작이 발표되던 빛나는 순간을 정점으로 두고, 시계의 태엽을 뒤로 감아본다. 1990년 12월25일 이화여대 후문 길 건너편 주택가에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만을 위한 책방이자 그림책 전문서점, ‘초방책방’이 문을 연다. 이곳에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한국 그림책의 미래가 자라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책방의 신경숙 대표가 1995년 7월1일 안데르센상을 결정하는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의 65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KBBY라는 한국지부를 설립한다. KBBY 홈페이지에는 한국지부의 목적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 좀 더 어려운 나라를 돕는 것, 다양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무언가를 꺼내놓을 수 있는,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돕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1990년대 후반은 한국의 독자와 출판인들이 그림책 곁으로 부지런히 모여 들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무렵 다들 이 새로운 예술의 발견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수지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티스트 북이라는 세계를 발견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몇 년 뒤 졸업 작품이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가제본을 들고 아는 사람도 없는 볼로냐도서전에 찾아간다. 이 책의 탁월한 독창성을 알아본 이탈리아의 코라이니 출판사가 출간을 제안한다. 작가 이수지의 출발이다.

그 후로 이수지 작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전작보다 놀랍지 않은 작품을 내놓은 적이 없는 창작의 길을 달려왔다. 최근작 <여름이 온다>에서 독자들은 앞으로의 더 긴 즐거움을 짐작하게 됐다. 그가 달려온 20년 동안 창작 그림책을 사랑하는 독자는 몰라보게 늘었고 우리도 여러 분야의 그림책 전문 인력을 갖게 되었다. 전국의 크고 작은 도서관과 학교에서는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한다. 이수지 작가의 수상을 기다리며 잠을 못 이룬 사람들 속에 그들이 있다. 수상이 결정된 이튿날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은 우리 그림책의 오늘만큼 근사했다. “앞으로도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계속해서 큰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 바란다”고 적혀 있다. 글과 그림이 서로 도와서 의미를 만들어가듯이 같은 마음으로 돕는 세계는 멋지다. 이것이 그림책의 정신이며 어린이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수지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그림책을 사랑한 모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바라던 세계에 한발 더 다가섰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