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산불이 지나간 뒤에 무엇을 꿈꿀까](https://img.khan.co.kr/news/2022/03/28/l_2022032801003429000307632.jpg)
200시간 넘게 불타는 산을 보며 김소연의 시 ‘실패의 장소’를 생각했다. 그 시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끝난다. “같은 악몽을 사이좋게 꾸던/ 같은 꿈을 사이좋게 버리던.” 불이 번지는 며칠 사이 여럿이서 비슷한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비슷한 희망이 버려지는 것 같았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우리들의 사이는 좋을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의 산이라는 실패한 장소에서 우리가 재정비해야 할 관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번 산불은 경북 울진에서 발생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산불 중 역대 최장기 산불이자 최대 규모 산불이라고 한다. 지구 곳곳을 휩쓴 거대한 산불의 징후가 한국에도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한국 산불의 경우 아직까지는 자연 발화가 드물다. 지난 21일 소방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야외 소각 행위로 인간이 만드는 불씨가 절반 가까운 원인에 해당한다. 논과 밭두렁을 태우거나 쓰레기를 태우다가 불길이 번지는 것이다. 하지만 초대형 산불의 책임을 발화 제공자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산불이 길어지고 거대해지는 것은 기후위기와 몹시 유관하기 때문이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째서 불을 끄기 어려워졌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화재 진압이 어려웠던 결정적인 이유는 기후위기다.
지난 20일 녹색연합은 “울진·삼척 산불이 이렇게까지 커진 원인은 유례없는 겨울 가뭄에 있다”고 발표했다. 건조한 기후가 산불의 대형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산불의 일상화와 대형화를 막으려면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산불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녹색연합은 덧붙였다. 그동안 산불조심기간은 점차적으로 길어져왔다. 3~4월에 집중 발생하던 산불이 서서히 연중화되면서 산불조심기간의 시작 역시 앞당겨지고 끝은 미루어졌다. 강수량이 줄고 강수 주기가 짧아져서다. 적설량 역시 줄었다. 기온이 높아지며 눈과 비가 적게 내렸고 땅이 한껏 건조해졌다. 불이 크게 번지기 좋은 조건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산불은 쉽게 대형화된다.
소나무가 많은 조건도 산불 대형화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소나무를 주요 수종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인간이 간섭해온 인공조림의 결과다. 소나무는 송진이라는 휘발성 물질과 낙엽을 비교적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탈거리도 많다. 인화성이 강한 나무인 것이다. 불에 취약한 연료가 특수하게 많은 탓에 이번 산불은 크게 오랫동안 번졌다. 산과 숲에도 생명다양성이 높아야 산불 예방과 진압에 도움이 된다. 생명다양성을 추구하고 산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기관 중 하나는 산림청이다. 하지만 산림청이 국내외적으로 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산림보호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산림을 목재 사업이자 경제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산불은 이제 겨우 한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지만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전 지구적 재난이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될수록 몽골, 아마존, 미국, 남아프리카, 유럽 등에서 거대 산불이 일어났다. 6개월 만에 진압된 호주 산불에서는 10억마리의 야생동물이 죽었다. 산불은 기후재난 시대의 증거다.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와 미래 세대의 손실도 어마어마하다. 여러 달갑지 않은 것들이 뉴노멀이 된 2020년대에 산불 역시 새로운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 지나간 여름 기이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던 폭우에 관해 ‘이 장마의 이름은 기후위기’라는 문장이 붙여졌던 것처럼, 이 산불의 이름 역시 기후위기다. 산불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다.
산이 너무나 소중한 실패의 장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패의 장소에서도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최재천 교수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많은 성숙한 숲은 불이 나도 잘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숲이 성숙해질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 지구별 동지들의 과제다. 발화 제공자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산불에 접근하는 정치인과 실무자와 시민들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숲과 좋은 관계를 맺을수록 악몽의 반복도 줄어든다. 같은 악몽을 꾸었어도 같은 꿈을 버리지는 않는 서로를 찾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