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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가르히의 초상

‘올리가르히’는 원래 러시아의 신흥재벌이나 정치체제를 지칭하나 ‘권력자 소수에 의한 지배’의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기득권 카르텔’이 공고한 한국적 올리가르히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다당제 연합정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이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 28일 국회 본관 앞에서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 국회사진기자단

‘올리가르히’는 원래 러시아의 신흥재벌이나 정치체제를 지칭하나 ‘권력자 소수에 의한 지배’의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기득권 카르텔’이 공고한 한국적 올리가르히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다당제 연합정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이 시급하다. 사진은 지난 28일 국회 본관 앞에서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 국회사진기자단

러시아 제일의 갑부이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절친한 재정지원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둘러싼 논쟁은 포르투갈에서도 뜨겁다. 유대계로 이스라엘과 영국의 국적도 가지고 있던 그가 포르투갈의 국적을 작년 말에 취득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포르투갈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던 법적인 근거도 특이하다. 그의 선조가 8세기 초엽 포르투갈에 살았던 유대인이었는데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러시아로 이주했다. 2013년과 2014년에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각각 이들의 후손에게도 국적을 회복할 수 있게 한 한시적인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아브라모비치는 포르투갈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푸틴과 그를 둘러싼 러시아 권력 엘리트의 핵심부를 겨냥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가 시작되면서 그의 국적 취득에 필요했던 증빙서류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으로 논쟁이 불거졌다. 영국의 전통적인 축구팀 첼시의 구단주이기도 했던 그에 대한 영국 정부의 제재가 시작되면서 그의 자산마저 동결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에 대한 관심도 증폭했다. 원래 그리스어의 ‘소수 권력자’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현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소련이 해체되었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무진장한 석유, 천연가스, 광물자원을 관장했던 대규모의 국영기업체가 민영화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와해 직전의 공산당과 부패한 관료와 결탁해서 이른바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를 아주 싼값에 인수할 수 있었던 소수의 초대형 부호가 러시아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올리가르히의 내부에도 갈등이 심해졌는데 유대계인 미하일 호도롭스키를 둘러싼 갈등이 이의 대표적인 예다. 보리스 옐친 정부 때 러시아 제일 갑부였던 그는 푸틴과 갈등을 빚으면서 사기와 횡령, 그리고 탈세 혐의로 9년 징역형 선고를 받아 복역 중, 2013년 말에 특별사면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아 푸틴을 지금 앞장서서 비난하고 있는 그와 반대로 우크라이나 사태 탓에 손발이 완전히 묶인 아브라모비치는 ‘템스강의 모스크바’로 불리는 런던의 하늘 아래서 함께 살고 있다.

올리가르히를 이야기하면 이는 당연히 러시아나 중국, 이란과 터키 또는 중동의 산유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혹시 그런 경향이 보이더라도 이는 아주 제한적인 의미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러는 물론 미·유럽도 올리가르히

미국에서 1865년부터 대략 30년간에 걸친 이른바 ‘도금시대’를 장식했던 카네기, 록펠러, 포드, 밴더빌트 등의 거대한 부호들이 등장, 정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가 있었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이 지적한 것처럼 이 시대는 밖으로는 황금이 빛나는 것처럼 화려해 보였지만 안으로는 완전히 부패 타락한 시대였다. 그러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독과점의 금지정책을 편 이후에는 권력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 미국 사회가 굴러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다수 미국인은 믿는다. 혹시 그런 경향이 보이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으로 통제가 충분히 가능한 ‘시민적’인 올리가르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1950년대에 라이트 밀스는 그의 저서 <파워 엘리트>를 통해서 정보, 권력 그리고 돈과 인맥이 서로 얽히면서 미국 사회를 은밀하게 움직이는 힘의 구조를 세밀하게 파헤쳤다. 이와 같은 주장이 그러면 이때로부터 반세기를 훨씬 넘긴 오늘날에도 타당한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경험적인 공동연구 <미국정치의 검증이론: 엘리트, 이해집단 그리고 평균적인 시민>을 미국 정치학자 마틴 길렌스와 벤저민 페이지는 2015년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명시적으로 미국의 올리가르히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 정치가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재계와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는,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2013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저서 <21세기의 자본>에서 신자본주의의 여파 속에서 투기성 자본으로 엄청난 이윤을 챙긴 억만장자와 그렇게 할 수 없어 몰락하는 중산층 사이의 심각해진 소득격차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고, 이것이 곧 미국적 올리가르히의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과 다른 정치 문화적 배경을 지닌 유럽에서 소수의 권력 엘리트에 의한 올리가르히는 없는가. 미국과 달리 오랫동안 거대 자본과 투쟁해 온 좌익정당이나 노동조합이 강한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체제도 마찬가지로 지금 엄청난 부를 축적한 소수에 의한 올리가르히라고 피케티는 주장한다. 이른바 ‘좌파’라는 영국의 노동당이나 프랑스의 사회당도 이미 지배 엘리트의 한 부분이 된 데서도 한 원인이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과거처럼 저소득층과 저학력자가 좌파나 진보정당을, 고소득자와 고학력자가 우익이나 보수 정당에 그들의 표를 던졌던 시대는 지났다. 진보나 보수의 권력 엘리트가 서로 바꾸어 가며 집권하면서 경쟁 엘리트의 이해관계도 수용하는, 복잡해진 엘리트 정당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격량 속에서 갈수록 불안해진 중산층은 물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을 더는 찾을 수 없다고 여기는 사회적 약자들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거나 대중영합주의의 유혹에 빠진다.

권력 엘리트가 빚어내는 이러저러한 올리가르히의 모습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러면 올리가르히의 한국적 모습은 어떤가. 지난 대선의 결과는 이와 관련해서 나름대로 어떤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올리가르히의 위기와 기회

올리가르히, 즉 권력자 소수에 의한 지배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용어는 아니나 한국에서는 대체로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것 같다. 권력 엘리트나 지배 엘리트보다는 계급 이론적인 성격이 희석되면서 개념의 융통성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와 더불어 나는 1960년대 중반, 전후 자유주의적 지성의 상징이었던 랄프 다렌돌프가 당시 무기력해진 서독의 엘리트를 비판하면서 꺼낸 ‘두려움의 카르텔’이라는 화두를 떠올렸다. 지금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 엘리트 집단은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두려움커녕, 너무나 저돌적이며 전투적인 엘리트의 카르텔이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특히 부동산 문제로 불안해진 중산층과 미래의 전망이 어둡게만 보이는 사회적 약자와 청년층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단순한 구호를 내건 대중영합주의적인 보수후보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 점에서 위에서 이미 언급된 미국이나 유럽의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의 권력 엘리트 사이의 갈등 모습은 특별하다고 느껴진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극단적인 대결은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순전히 말의 잔치에 지나지 않고 있음을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또 이런 문제가 오랫동안 내면화된 지역주의나 연고주의, 아니면 민족분단 때문에 생긴 갈등에 기초하고 있기에 이의 해결이 역시 쉽지는 않다.

이번 대선의 결과가 승자독식만을 담보하는 지금의 정치체제가 문벌, 족벌, 학벌, 재벌, (재벌)언론 등의 틀 속에서 동종교배해 온 한국적 올리가르히를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운용을 가로막는 그간의 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개혁해야만 하는 과제의 시급성을 이번 대선 결과는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대선을 얼마 앞두고 내놓은 민주당의 정치개혁안이라 이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해 통합정부의 수립, 연동형·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 개혁, 대통령 4년 중임제·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현안을 거의 지적하고 있다. 이런 핵심적인 문제를 국민적인 동의 아래 개헌을 통해 해결한다면 이는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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