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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피와 뼈…이야기는 힘이 세다

세계대전과 독일의 만행에 관한 문학과 영화들은 차고도 넘친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유명작들에 이어 2020년 오스카에서 주목받은 <조조 래빗> <1917>까지. 놀라운 것은 반세기 이상 반복되는 이 식상한 소재가 늘 새로운 서사로 변주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는 점이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스윗 프랑세즈>는 독일장교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 여인의 고뇌와 절제된 감정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바 없는 집단의 갈등과 개인의 원초적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을 조명한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가족이 몰살당한 땅 ‘폴란드’란 단어를 평생 금기로 삼고 기차 환승 중에도 단 한 뼘의 독일 땅도 밟지 않으려는 완고한 노인의 모습을 통해, 태극기 부대의 트라우마를 조금은 이해하고 싶게 만든다.

나치에 관한 많은 스토리들은 입체적이며 현재적이다. 전쟁과 파시즘의 광기가 어느 미치광이의 난동이 불러온 과거의 비극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운다. 일상에 내재한 악의 평범성, 가해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피해자들의 배신·비열함을 담담히 응시하지만, 그들의 범죄와 폭력을 정당화거나 쉽게 화해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인간적 이해와 행동에 대한 책임은 다르기 때문이다. 전범국가 독일이 가장 투철한 인권과 법정신을 구현하는 나라가 된 데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끼친 영향력도 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식민시대가 왜곡시킨 수많은 개인사와 집단 비극들, 그 상흔이 동족상잔의 시기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파장이 상당함에도, 일본은 더욱 극우화되고 국내 역시 친일적 극우와 민족주의 갈등이 지속된다. 침략자보다는 당한 우리가 열등하다는 식민사관, 섣부른 균형감으로 화해를 논하는 지식인과 추종세력도 여전하다. 애국자로 둔갑한 친일 후예들이 대를 이어 정치·경제·언론 권력의 핵심에 있다보니, 제대로 시작도 못한 친일청산보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문명은 21세기인데 정신은 개화기다.

애국과 정의 같은 거대 담론만 존재하고,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민족 영웅과 악의 화신, 오로지 희생양으로서의 위안부만 등장하는 흑백의 근대사는 거칠고 둔탁한 사유를 만든다. ‘선악’에 대한 극단적이고 단편적인 이해는 교과서 속의 변절자엔 분노하면서도 나의 가족과 내가 지지하는 인물들은 그런 악마일 리가 없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화로 귀결된다. 나치 당원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평생을 속죄하며 봉사했다던 오드리 헵번과 같은 양심을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아닐까 싶다.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국내외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난 자이니치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같은 시기 이민세대를 다룬 작품 중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가 강렬했다. 항일 영웅담의 뒤편, 시대의 그늘 속에서 괴물이 되어간 인간 군상들에 대한 잔혹한 리얼리즘이다. 실제의 역사는 <파친코>와 <피와 뼈>, <암살>과 <밀정>, <여명의 눈동자>와 <우리 학교> 그 모든 것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역사의 공과를 설득하는 힘은 이념의 프레임으로 재단된 선악의 서사보다는, 개인의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 변화하는 세상을 스스로 응시하게 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사람에 의한 상처로 미쳐가던 왕의 마음을 되돌린 것은 거창한 국가관이 아닌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였다. 직접 경험의 한계를 가진 인간이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통한 간접 경험의 확대일 수밖에 없어서다. 국경 없는 OTT 서비스를 통해, 더욱 다양한 시선의 작품들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에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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