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 AI 교육혁명이 대체 뭡니까

이젠 정책의 시간이다. 모든 분야에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온 이목이 쏠려 있다. 그런데 교육에 대해선 선거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들은 기억이 없다. 한 유튜브 예능 채널에 출연해 “기술고등학교·예술고등학교·과학고등학교, 고등학교 갈 때는 학교들을 좀 나눠야 될 거 같다”며 이미 49년 전부터 존재해 온 특성화고·특목고의 필요성을 언급해 대체 언제 적 얘기냐는 빈축을 샀던 기억만 강렬하다. 당선인의 1호 교육공약이 뭐였나. 공약집을 뒤적여봤다. ‘AI 교육혁명’이라는 알기 힘든 말이 나온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공약집의 ‘희망사다리 교육’ 파트 1번 공약은 “AI 교육혁명으로 모두 다 인재로 키우겠습니다”이다. 교육정책분과위원장으로, 공약 밑그림을 그렸다는 나승일 전 교육부 차관도 경향신문 인터뷰(3월17일)에서 당선인 교육공약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인공지능(AI) 교육을 꼽았다. 4차 산업혁명 및 디지털 전환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교육 방향이나 미래 과제에 초점을 두고 공약을 마련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코딩교육과 초·중등 교육과정의 AI 필수화, AI를 활용한 학력진단 시스템 구축과 AI 보조교사(튜터)로 학습격차 완화·기본학력 향상, 교육과정 개정을 통한 AI 교육 확대·대학 입시 반영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내용을 다 읽어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개운치 않은 느낌의 핵심은 이것이다. AI를 교육에 이용할 순 있지만, 이 자체가 교육의 목표, 비전이 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력이란 기치하에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입시위주 교육을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으로 전환하겠다며 중학교 과정에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주도적 인재로 성장하는 것을 돕겠다는 취지로 고교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게 하는 고교학점제를 1호 교육공약으로 내세웠다. 교육의 지향점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AI 교육혁명은? AI 전문가를 키우겠다는 것인가, AI를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아니, 궁극적으로 어떤 교육을 목표로 삼겠다는 건가. ‘교육패싱’ 논란이 일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 비전은 무엇인가.

나머지 교육공약들은 ‘MB 정부 시즌 2’를 예고한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유지,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일제고사) 부활이 그렇고, 교육과 과학 통합 부처가 탄생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 또한 MB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를 상기시킨다. 당선인은 교육을 경제성장의 하위 개념으로 생각하듯 노동개혁과 교육개혁을 말한다. 규제혁파 공약에서 신산업 육성을 거론하며 에듀테크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의지도 숨기지 않는다.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자율과 경쟁, 다양성이라 치장했지만, 고교서열화를 강화하고, 실질적인 고교입시 부활로 사교육 연령을 끌어내려 학교현장의 황폐화를 불러온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일제고사 역시 학력격차 해소 방안은 없이, 학교 간, 학생 간 불필요한 과열 경쟁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쟁 강화 분위기 속 MB 정부에서 학교폭력이 극단으로 치달은 기억이 생생하다.

전문가들이 꼽는 미래형 교육의 요체는 창의성과 소통, 협력이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스스로 배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배움이 즐거움이 되는 교육, 협력의 교육이 살아나야 한다. 미래사회에 맞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강도 경쟁을 유발하는 교육에 AI, 코딩만 붙인다고 미래형이 되는가. 오히려 새로운 사교육 시장만 열릴 뿐이다. 교육의 틀 자체를 미래형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학력이란 무엇인가, 학습자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나, 자기주도적 배움과 창의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등 교육의 본질에 도전해 답을 찾아야 한다. 큰 방향을 정한 후, 목표와 방법, 순서를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에 따른 학습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재수를 넘어 N수생이 급증하고, 자퇴 후 검정고시가 명문대 진학의 한 통로로 자리 잡을 지경이다. 사교육비는 조사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대입 정시 비율 확대라는 기름까지 쏟아부으면 그러지 않아도 휘청이는 공교육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 사회의 무한경쟁 궤도에서 창의성과 소통, 협력이 싹트긴 어렵다. 앞뒤가 따로 노는 정책 불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AI가 교육 문제의 만병통치약이 될 리 없다. 화려한 수사로 지향점을 흐리고 있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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