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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응징과 보복의 무한반복

입력 2022.04.02 03:00

전쟁만큼 인간의 파괴적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만드는 일도 없다. 전쟁의 참혹함이란 눈에 보이는 인명 피해와 문명 파괴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보편적 믿음마저 뒤흔든다. 전쟁은 인간의 고귀함을 지켜내려는 인류의 오랜 노력과 희생을 허망하게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도 이제 5주째를 지나가고 있다. 몇 주 내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던 푸틴의 계획은 이미 오판으로 판명났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전쟁의 참상은 전 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위정자 한 사람의 그릇된 마음에서 시작된 전쟁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을 고통의 불길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집단적인 분노와 증오가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화염은 온 세상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정도이다. 사람들은 자국의 전쟁이 아닐지라도 증오감에 사로잡혀 전쟁이 만들어내는 파괴의 에너지에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 자칫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정의라는 이름으로 광기의 선동에 휘둘리기도 한다.

러시아는 인도주의와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전쟁 승리에 집착하고 있다. 휴전회담은 다섯 차례 넘게 진행되고 있지만, 진전은 없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고통과 인내를 강요받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희생은 계속되고 분노는 커지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바라보는 전 세계인의 집단 정서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건 아마도 ‘분노’일 것이다. 피해국인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상당수의 러시아 국민마저 푸틴의 무도한 전쟁 결정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명분 없는 침략전쟁 속에서 자국의 순수한 젊은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장으로 내몰리고, 무고한 민간인은 물론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살해되고 있다.

이 비극은 한 위정자의 그릇된 한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한 생각은 온 세상을 밝히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자신은 물론 사람들을 분노와 증오의 암흑천지에서 헤매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하나의 생각은 무섭다. 그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오고, 행동을 불러오고, 파국을 불러온다. 마치 도미노가 연쇄적으로 쓰러지듯 모든 일이 잇따라 더 큰 증오와 분노를 쌓아가고 있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고 결국 맹목적 증오로 이어진다.

2500여년 전, 붓다는 ‘업(業·karma)’이라는 관점을 통해 전쟁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초기 경전 중의 하나인 <상윳따 니까야, (전쟁경)>에 따르면, “…죽이는 자는 또 다른 죽이는 자를 만나고, 승리자는 또 다른 승리자를 만나며, 욕하는 자는 또 다른 욕하는 자를 만나고, 격노하는 자는 또 다른 격노하는 자를 만나나니, 업(業)은 이처럼 돌고 돌아서 약탈자는 또 다른 약탈자를 만나도다”(S3:15)라고 제시한다. ‘업’은 인간이 몸으로 지은 행위나 내뱉은 말, 의도에서 비롯되는 원인과 결과를 말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의 몸과 입과 뜻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와 책임이 따르게 된다.

물론 약자의 편을 들어주고, 정의롭지 못한 폭력에 공분하고 맞서는 일은 용기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냉정히 바라보면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생명에 대한 자비와 연민일 것이다.

주변국 국민으로서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도 문제이지만, 과몰입하면서 응징과 보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내심 동조하는 것도 순간순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 공격과 폭력이 영웅시되고 그 무용담은 신화나 전설이 되어 퍼져나간다. 그렇게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고발은 왜곡되고 은폐된다. 그러면서 가해국이 다시 침략의 명분을 얻어간다. 또한 그 응징과 보복은 무한 반복되면서 파괴력을 키워나간다. 바로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폭력과 증오가 야만성과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힘이 되는 전쟁 속에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가야산에 엊그제는 봄비가 쏟아지더니, 이제 막 벚꽃이 피려고 한다. 전쟁 속 고통받는 이들에게 힘 보탤 길 없는 산승이지만, 만개하는 벚꽃처럼 우크라이나에도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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