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급 추천의 언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책의 뒤표지에는 대개 300자 내외의 추천사가 한두 개씩 수록되어 있다. 유명한 사람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할 것이다. 추천사의 분량이나 비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줄에 1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수백 자를 쓰고서도 1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글자에 매겨지는 가격을 감안하면 추천사는 가장 비싼 집필 활동임에 분명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그다지 유명한 작가가 아닌 나에게도 종종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한 달에 두세 건은 꼭 오는 듯하다. 우선은 내가 이 추천사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이 되지만, 그렇게 판단했으니 연락이 왔겠지 싶다. 원고를 살펴보고 쓰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그 분량과는 별개로 부담이 찾아온다. 이만큼 쓰기 어려운 글도 없는 듯하다. 그 어떤 글보다 잘 써야 하는 글인 것이다. 이 책이 잘되기를 바라는 편집자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나. 내가 받는 추천사만큼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책을 적어도 수십 권은 더 팔아야 할 텐데 내가 그만큼을 보전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벌써 미안한 마음이 되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인상적인 부분들을 적어 나가고, 그러다가 혹시 오·탈자를 발견하면 표시해 둔다. 추천사가 부족하더라도 “저어, 교정하며 이미 찾으셨겠지만 몇 쪽에 오·탈자가 있으니 확인해 주십시오” 하고 말해 두면, 정상을 참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다.

언젠가 어느 평론가가 “추천사가 주례사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하는 말을 한 일이 있다. 주례사 비평이라는 것은 이미 업계에서는 흔한 용어다. 추천사도 결국 한 제품의 리뷰인 것인데 책의 출가에, 아니 출간에 이르러서는 모두 좋은 말만 해두고픈 마음이 되는 듯하다. 나도 좋은 말만 얹고 싶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였던 몇 권의 추천사 요청은 고사하고 말았다. 좋은 것을 좋다 하는 것이야 기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포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쓰는 여러 추천사 중, 최상급 추천의 언어는 무엇일까. 나는 얼마 전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정혜진 작가의 <이름이 법이 될 때>(2021)와 곧 출간될 <세상의 모든 청년>(2022),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였다. 나는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 정확히 이런 마음이 되었다. ‘아, 이 책은 내가 썼어야 하는데.’ 그 감정은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에 가깝다. 이 책과 만났기에 비로소 내가 언젠가 이러한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의 이름을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일, 세상의 모든 청년의 서사를 전하는 일, 모두 작가 김민섭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인 것을 알았다. 나는 두 권의 추천사에 모두 “내가 언젠가 쓰고 싶었던 책”이라는 문장을 넣었다.

그러고 보면 잘 쓴 글은 독자에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라는 마음이 되게 한다. 작가들과 종종 어떤 독자 서평이 좋았는지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러한 서평이 가장 고마웠다는 듯하다. 글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겠다.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저도 당신과 닮은 삶을 살고 싶어요” 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몇 번 그런 사람들과 만났다. 말과 행동 모든 태도의 선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에 대한 추천사를 보냈다. “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졌어” 하고.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계속해서 보이고 읽혀 나가는, 또한 타인을 보고 읽어 나가는 존재다. 마음으로 타인에 대한 서평을 써 나간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란 그런 것이다. 조금 더 타인을 인식하는 일, 그래서 서로가 조금 더 나은 추천사를 써 나가며, 당신은 언젠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게 하는 일.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이라는 이 추천사도 자주 쓰면 이 역시 영혼 없는 주례사가 될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마음을 다해 추천할 이런 책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이름이 법이 될 때>와 <세상의 모든 청년들>. 나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 되어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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