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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수공예와 여성성의 동일화를 넘어…기성 권위에 맞선 잠재력 확인

입력 2022.04.05 22:33

수정 2022.04.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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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희 미술사학자·평론가·큐레이터

공예와 페미니즘 - 지승 공예가 이영순과 무늬 디자이너 장응복

이영순,‘기러기’(2000, 기러기 목형 위에 지승 36점). 작가 제공

이영순,‘기러기’(2000, 기러기 목형 위에 지승 36점). 작가 제공

이영순, 한지 공예 ‘지승’의 현대화에 앞장…세계적이고 지역적인 혼성적 미감으로 ‘공예 한류’ 이끌어
장응복, 민예에 특별한 가치 부여하며 무늬 디자인 브랜드 구축…전통 모티브의 현대적 차용 돋보여
두 작가의 실용성·예술성·작품성 아우르는 열린 태도, 여성적 가사 문화의 맥을 동시대적으로 이어가

1. 수공예와 페미니즘

지난해 1월 시작한 본 연재 기획 기사가 올해 4월 총 17회로 종료된다. 이번 최종회는 맺음말을 대신해 공예를 화두로 삼았다. 그 까닭은 전통 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익명의 여성들 노동, 특히 그들의 가사 행위와 살림 노동이 공예 발전의 큰 힘이 되었고, 여성들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수공예나 민예가 페미니즘 미술의 정치적·미학적 토대를 만드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특별한 장비나 전문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천, 바느질, 자수, 뜨개질과 같은 가사적 수공예나 대부분 수공으로 이루어지는 향토적 민예가 여성 미술과 맺는 정서적 관계이다. 어깨 너머 식으로 전수되는 가사 교육과 고된 육체 노동으로 체화되고 길들여지는 살림의 윤리학은 ‘도망 보따리’로 우화화되는 여성의 심리적 저항을 내면화시킨다. 더구나 가사 노동의 꽃이라 볼 수 있는 수공예는 손 제작의 쾌감과 자급자족적 만족감으로 피해 의식을 달래는 치유적 기제이기도 했다. 수공예의 수행자들인 가내 부녀자들과 전승자들인 공예가, 그것을 예술적으로 차용하는 현대 미술가들은 억압적 현실을 창작 욕망으로 극복하는 승화 의지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정통 부계 미술로부터 거리 두기를 수행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평가절하되었던 비주류 수공예와 주변부 민예가 창조적 영감으로, 의미 있는 대안으로 다가왔으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영순, ‘코쿤탑’(2016, 새우젓 독 8점). 작가 제공

이영순, ‘코쿤탑’(2016, 새우젓 독 8점). 작가 제공

우리는 이미 지난 연재를 통해 수공예를 인용한 일부 미술가들의 작업이 단순한 매체적 발상을 넘어 심리적·운명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창조적 비약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시퀸(금속 또는 합성수지로 만든 얇은 장식 조각)과 구슬로 장식한 이불의 ‘몬스터’, 김수자의 방랑 보따리, 함경아의 북한 ‘자수 프로젝트’, 양주혜의 ‘색점 포대기’, 이수경의 ‘보석 왕관’, 짚풀·매듭·털실로 만든 양혜규의 ‘중간유형’ 등은 공예를 통한 페미니즘 조형 언어의 확장성을 예시했다.

그러면 궁극적 목적론에서 미술과 다를 수밖에 없는 공예 작가들은 어떠한 비전과 자세로 공예를 현대적으로 장르화하고 페미니즘으로 의식화하고 있는지, 마지막 회 ‘환상의 복식조’로 초대한 이영순(1950)과 장응복(1961)의 작업을 통해 알아본다.

오늘날 수많은 여성 공예가들이 전통 공예의 발전적 계승을 모색하며 작품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재료의 물성이나 방법론적 기술이 중시되는 공예의 특성상 공예의 사회적 배경이나 그에 깃든 젠더적 함의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사라져가는 지승 공예를 계승·현대화하는 이영순과 전통 민예를 모티프로 활용하는 무늬 디자이너 장응복은 여성 공예의 창조적 동인이었던 일상적 가사 행위와 삶의 양식을 여성 양식으로 차용, 승화하는 한편 실용성·예술성·제품성을 아우르는 열린 태도로 예로부터 전래된 여성적 가사 문화의 맥을 동시대적으로 이어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의 작업에서 여성 공예의 사회적 맥락성과 젠더 정치학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도 이런 견지에서다.

이영순, ‘장독대’(2002, 지승 항아리 20점). 작가 제공

이영순, ‘장독대’(2002, 지승 항아리 20점). 작가 제공

2. 이영순의 지승 공예, “옛것 같은 새것, 새것 같은 옛것”

지난 50년간 한지 공예에 몸 바쳐 온 이영순, 그는 지승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승의 명맥을 이어나갈 전수자, 아니 오늘을 사는 현역 공예가로서 지승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승은 종이를 꼬아 만든 노끈으로 씨줄·날줄로 엮어가며 직조하는 전통 지공예의 일종으로, 본디 전문적 장인보다는 촌로, 선비, 스님들이 여가를 즐기는 소일거리로 삼으며 주로 남성공예로 전래됐다. 그러나 가사용품, 생활 민예품을 제작하는 수공예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여성 공예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종이 특유의 질감, 여러 겹으로 배접되었을 때 화살도 뚫지 못하는 내구성, 짜임새의 정교함에서 종이 예술로서 지승의 미학적 잠재력을 일찍이 간파한 이영순은 1970년대 중반부터 지승줄로 바구니, 항아리 등 생활 용기들을 직조하거나, 혼례용 기러기나 바가지 같은 기존 민속품의 표면을 지승줄을 엮어 씌우는 다양한 수법과 형태의 지승품을 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일종의 응용 지승인 ‘코일링’ 작업을 시도했다. 철제로 만든 의자, 옷걸이, 새장, 병 건조대 등 실내 용품을 지승줄로 감아 쇠의 냉기에 온기를 불어넣고 질감을 변화시키는 전통 공예의 현대적 활용을 통해 “옛것 같은 새것, 새것 같은 옛것”이라는 자신의 지승 미학 비전을 가시화했다

지승에 입문하기 전부터 그는 고도의 기능과 정교한 외양을 갖춘 각종 지함을 만들어왔다.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골동 지함을 참고로 종이를 재단하고 염색하고 배접하여 형틀을 만든 후 자수와 색종이로 패턴을 오려 거죽을 장식하는 복잡한 공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조상들의 기술력과 지혜를 물려받은 종이 공예의 달인이 되었다. 갓집, 서류첩, 반짇고리, 특히 큰 상자 속에 작은 칸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각종 색실을 섞이지 않게 보관할 수 있는 실첩 상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수작업으로만 완결된 장인적 일품주의의 전형이었다.

지함과 지승 작업으로 한지에 묻혀 살던 작가는 작업실에 쌓이는 자투리 종이로 평면적 ‘페이퍼 메이킹’을 실험했다. 지승의 태생적 기원이 쓰다 남은 종이였음을 상기하게 하듯, 버려진 종이 쪼가리를 몽땅 갈아 종이 체에 밭여 수제 종이를 만든 후 그것으로 종이색의 모노크롬 추상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화면의 표면성과 평면성을 미학화한 화단의 형식주의 추상화가들과 달리 그는 용도 폐기된 종이를 수제 종이로 회생케 하는 자연 친화적이고 순환 지향적인 매체 실험으로 비형식적이고 비의도적인 추상화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그것은 지공예의 역사와 개인 서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훈훈한 인간적 추상이자, 구태여 성별화하자면 이영순이라는 여성 공예가의 자연사랑과 리사이클링 감성이 만들어낸 여성적 추상이다.

이영순, ‘종이 실첩 상자(내부)’(1976,  한지, 비단염색, 판지, 자수). 작가 제공

이영순, ‘종이 실첩 상자(내부)’(1976, 한지, 비단염색, 판지, 자수). 작가 제공

한지 단색화를 대거 발표한 2002년 금호미술관 개인전 이후 작가는 전시 활동을 일시 멈추고 수도사적 노동을 요구하는 지승 제작에만 몰두하였다. 2014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개인전은 작가에게 30여년간 축적해온 무수한 종이 작품들을 작업실 밖으로 끌어내 빛 보일 중대한 기회를 제공했다.

이 전시를 계기로 화단과 공예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파리 루브르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공예 파리전’에 초대되어 지승으로 만든 새우젓 독 14개를 나란히 병렬한 현대적 개념의 설치작을 출품했다. 실로 이 첫 해외전은 지승을 세계화하는 발판이 되어 이후 다수의 해외전 초대로 이어졌다. 같은 해 밀라노 디자인 트리엔날레와 ‘텐트/런던 디자인 페어’에 출품된 지승 항아리가 조형성과 토속성을 평가받아 널리 회자되면서 결국 공예와 디자인의 전당인 런던의 V&A(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의 소장품으로 채택됐다. 2019년에는 스페인 가죽제품 명가 로에베가 주최하는 ‘로에베 공예상’에 지승 새우젓 독 8개를 수직으로 세운 높이 165㎝의 ‘코쿤탑’을 출품,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어 행사 순회국인 일본의 소게쓰 화랑에서 발표했다.

파리, 런던, 밀라노, 도쿄에서 선보인 지승 항아리의 작품성을 인정한 로에베 재단은 2022년 6월로 예정된 밀라노의 살로네(Salone) 전시에 이영순을 초대해 코쿤탑 연작 3점의 출품 이외에 지승 핸드백 30개의 출시를 의뢰했다. 자연, 문화, 재생이라는 키워드를 내건 살로네 전시에 전시 주제를 충족시키는 코쿤탑과 함께 작가의 한글 서명이 새겨진 항아리 모양의 지승 핸드백이 공개되는 것이다. 앞서 5월에는 뉴욕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이 프로모션 전시로 코쿤탑과 핸드백을 선보인다. 국제 명품시장에서 시판될 한국의 지승 핸드백은 제품성과 상업성으로 재조명되는 현대적 개념의 생활공예라는 측면에서, 동시에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인 혼성적 미감으로 파급되는 공예 분야의 K웨이브 흐름을 확인시키는 맥락에서 그 의미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장응복, ‘부티크호텔 도원몽 다이닝룸’(2013). 작가 제공

장응복, ‘부티크호텔 도원몽 다이닝룸’(2013). 작가 제공

3. 장응복의 무늬 디자인, 작품 같은 제품, 제품 같은 작품

장응복은 공예, 디자인, 미술을 넘나들며 섬유, 가구, 옷, 실내장식, 공간을 디자인하는 전방위 디자이너이다. 그러나 그는 소위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전통 문화, 특히 민예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며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공예적이면서도 디자인적인 자신 특유의 디자인 브랜드를 구축한다. 동시에 우리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생활 속 디자인을 표방하며 현대 문화 양식의 변화와 발전을 유도한다.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기능+”라고 말하듯, 그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실용적 기능과 함께 ‘예술적 알파’를 지녀야 한다.

그는 예술적 알파를 바로 한국 고유의 정서와 이미지 유산에서 찾는다. 문인화, 민화에 등장하는 도상적 모티프의 비례를 확대·축소하거나, 외곽선을 변형·반복시키고, 번짐과 태우기 기법 등 다양한 수법으로 추상화, 패턴화된 자신의 무늬 디자인을 브랜드화한다.

나아가 그는 전통 무늬에서 조형미 이상의 문화적 상징성을 발견하며 그것을 ‘이미지 언어’ 혹은 ‘뜻그림’으로 풀이한다. 산수화, 화조화, 십장생도, 어해도, 문자도뿐 아니라 달항아리, 부채, 골무, 꽃신 같은 민예품의 색채와 형상의 상징성을 연구하며 그는 어느새 무늬에 천착하는 무늬주의자가 되었다.

기능과 예술의 융합을 꾀하는 디자인 철학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고 대중적으로 파급하기 위해 그는 1986년 25세라는 이른 나이에 직물과 실내 디자인회사 ‘모노콜렉션’을 설립했다. 모노콜렉션은 단순 사업체라기보다는 그의 총체적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이 발상, 기획, 제작되는 장응복의 뇌관이자 무늬 미학을 태동시킨 모체였다. 모노콜렉션 제품으로 프랑크푸르트 ‘하임 텍스틸’(2000, 2001년)에 참여하는 등 해외 진출에 성공하였으나 오히려 그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해 고심했고, 결국 한국 전통과 아시아 정서에 기반한 무늬 디자인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노력으로 프랑스 가구업체 로셰 보부아(2007~2009년) 콜렉션 출시와 파리 메종&오브제(2012)전에 참여했다. 또한 프랑스 도메인 드 부아부셰(2015)에서 워크숍을, 덴마크 가구 브랜드 칼한센과 컬래버 전시를 개최했다. 2020년에는 V&A가 화문석 작품을 소장했으며, 2019년 이후 국내의 에르메스 매장의 인테리어를 위한 무늬 벽지와 천 내장재를 주문 제작하고 있다.

장응복은 비즈니스를 통해 생활 디자인을 실천하는 한편 갤러리, 뮤지엄 전시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예술 디자인을 주도해왔다. 예술과 디자인을 가르기보다는 작품 같은 제품, 제품 같은 작품을 창작하면서 디자인을 예술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2005년 도쿄 모리미술관 그룹전 초대를 시발로, 2010년의 아트링크 개인전에서 2019년 운경고택 전시에 이르는 다수의 전시회에서 그는 금강산도, 백자, 보름달을 패턴화한 직물 원단으로 한복, 소품, 가구들을 제작하며 예술과 디자인,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융복합적 미장센을 연출했다. 201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을 부티크 호텔로 변모시킨 개인전 ‘도원몽’에서 그는 무늬 디자이너로서뿐 아니라 주거를 다루는 공간 디자이너로서의 총 역량을 집중했다. 1995~2002년 사이 베트남, 모로코, 중국 등지에서 실제로 호텔의 실내 스타일링 전반을 총괄했던 현장 경험을 살린 이 호텔 프로젝트는 전통 모티프의 현대적 차용으로 귀족적 우아함과 서민적 해학, 이상과 현실을 공존시킨 디자인 예술의 총화였다.

장응복은 좋은 디자인의 저변을 확대하는 디자이너의 사명감으로 전통 재료와 자료를 채집하고 분류하고 보관하는 아키비스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2017년 모노콜렉션의 무늬 작업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총 40개의 무늬를 소개한 단행본 <무늬>를 출판한 데 이어 2022년 3월 ‘플로우’전에서 아카이브 자료를 100개의 책으로 엮은 트렌드 북을 전시했다. 그것은 사소한 일상과 자연을 찍은 사진들로부터 발췌한 컬러 팔레트, 기억을 환기시키는 시공간 이미지, 관련 텍스트와 패턴들을 결합하여 만든, 보는 이의 감각을 활성화하고자 의도된 촉각적 아카이브 책자였다.

그는 전통을 현대화하는 방편의 하나로 표준화된 모듈러 형식을 사용한다. 다양하게 조립이 가능한 모듈러는 사용하기 쉽지만, 무엇보다 제작에 따른 공해를 피하는 이점을 갖는다. 모노콜렉션의 마스코트인 거북이나 물고기 인형 역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원단 자투리로 만든 소품이다. 그의 디자인이 자연 사랑과 환경 의식에서 비롯되었듯, 무늬 디자인 역시 전통을 경배하며 현대적으로 재생하려는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정신의 소산이다. 특히 천 조각 패치워크는 여성들 간의 유대와 공동체 의식을 조장하는 전통 여성 문화의 부흥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 공예와 민예를 현대 디자인으로 번안하고 젠더 특성적인 가사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그의 디자인 총체를 현대판 르네상스, 부활의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다.

장응복·하지훈, ‘서울 운경고택 안방’(2019). 작가 제공

장응복·하지훈, ‘서울 운경고택 안방’(2019). 작가 제공

4. 공예의 젠더화, 젠더화된 공예에 대한 비판적 성찰

제4차 산업혁명의 격동적 사회변화 속에서 창의적인 손 작업은 새롭게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으며, 개인적 취미나 특기를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 활동으로 사회적 의미를 더해간다. 이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예, 특히 젠더적 특성이 강조되는 수공예를 통한 가상적 여성 공동체를 상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예가 공예가와 미술가는 물론 일반 여성들을 실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격식 없이 친밀하게 연결하는 연대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다.

그렇다면 공예를 여성적 영역으로 범주화하는 공예의 젠더화, 젠더화된 공예가 가능한가? 여성적 감수성, 여성미학과 관련하여 자수공예, 퀼트, 천 콜라주 등 여성 공예를 옹호하던 초기 페미니즘의 오류를 되돌아보면, 공예의 젠더화는 순수 미술을 남성 장르, 응용 미술을 여성 장르로 간주하는 부계적 이분법의 모순을 반복하는 일과 다름없다. 공예를 페미니즘 미술의 뿌리로 파악하는 관점은 결국 수공예와 여성성을 동일화하는 소박한 본질론을 넘어서 기성 권위와 체제에 맞서 수립된 것 밖에서 대안을 찾는 정치적 태도, 가치 평가 기준을 떠나 공예의 역사적·사회적 과정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검증하는 비판적 분석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관심 있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과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미술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게는 작가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유익한 기회였다. 이 연재를 통해 초대 작가 39인의 특출한 사고력과 남다른 감성, 그들의 창작의 희열과 고뇌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 그것도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유리천장이 깨지지 않는 한 페미니즘이 결코 폐지될 수 없는 여성들의 문화적 과제라는 점도 재인식했다. 정치는 남성, 문화는 여성으로 등식화하며 여성의 창조적 본능마저 폄훼시켜온 부계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창의력과 지적활동은 미래 사회를 규정 짓는 중요한 문화적 인자이자 국가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She’s coming”이라는 구호는 여성 파워의 잠재력, 페미니즘 미술의 당위를 대변한다.

<시리즈 끝>

■김홍희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17)수공예와 여성성의 동일화를 넘어…기성 권위에 맞선 잠재력 확인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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