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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고, 어떤 유품

입력 2022.04.06 03:00

어떤 분이 물어보셨다. “왕진을 나가던 환자분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기도 하시나요?” 왕진하는 의사를 소재로 하여 최근 N포털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을 구독하는데, 웹툰 주인공 의사가 왕진하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후 조문을 가는 장면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이라 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방문을 해서 진료를 하는 우리 같은 의료인들은 부고를 자주 받는다. 대부분의 부고는 부고라기보다는 약속 취소의 형태로 들어온다. “오늘 방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님께서 며칠 전에 돌아가셨습니다”라는 형태 말이다. 물론 “그동안 방문해 진료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 어머님이 집에서 돌아가셔서 가족들끼리 잘 모셨습니다”라고 조금 더 길게 전해주시는 가족들도 있다.

명색이 의사와 간호사들인데, 환자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위급합니다, 우리 집으로 빨리 좀 와주시겠어요?” 같은 연락은 안 받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요청할 일은 아니라고 보호자들이 생각하신 모양인지, 그런 연락은 드물다. 그리고 실제 우리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기도 하다. 우리조차도 119에 전화하시라고 설명드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우리가 듣는 부고는 한 템포 늦은 것들일 수밖에 없다.

가끔 직원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간다. 그중엔 원래 알고 지내던 가족들도 있고, 왕진을 나가면서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분들도 있다. 왕진을 나가는 모든 분들의 장례식장을 찾아뵙는 것은 아니다. 이미 부고를 늦게 들어서 장례식이 끝난 경우가 대부분일뿐더러, 그만큼의 관계가 아닌 분들도 많다. 조문을 가는 경우는 대개 방문한 지 오래된 분들, 그래서 가족들과 일종의 연대의식이 형성되어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하고픈 분들이다.

부고를 전해주신 후에 더러 방문하시는 가족들도 있다. 가끔은 돈 봉투를 들고 오시기도 해서 정중히 거절한다. 거절이 힘든 경우에는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금으로 정식으로 기부를 받는데, 돈보다는 물품을 건네주시는 경우가 더 많다. 성인용 기저귀나 1회용 방수패드, 욕창 재료, 가래를 뽑는 석션팁과 같이, 이제는 더 사용할 일이 없어진 의료소모품들. 장례식 끝나고 방을 정리하면서 버리기 아깝다 생각하다가 “동네에 저 같은 분들 있으면 나눠주세요”라며 가지고 오신 유품 아닌 유품들이 우리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간다.

방문하는 가정에서 들려오는 모든 부고는 팀 채팅방에 올라온다. 어떤 질환으로 언제부터 방문을 나가던 무슨 동에 사시는 누구님이 며칠 전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같이 살던 따님이 전해주셨다는 내용. 우리는 채팅방에서 함께 명복을 빌고 그분에 대한 기억을 잠시 공유한 뒤, 그 주의 회의 시간에 사례로 올린다. 그분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의 시간을 같이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사례 공부, 병원 용어로 케이스 콘퍼런스라고 해도, 대형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의료적인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분들이 집에서 돌봄을 받기를 원하시는지, 집에서 돌보기 위한 조건은 잘 마련되었는지, 돌아가실 때까지의 시간은 평안하셨는지, 가족들과의 역할 분담은 적절했는지, 지역사회 돌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우리 일에서의 환기를 위한 돌아봄이다. 우리 같은 의료인들은 잦은 부고에 노출되어 있어, 적절한 환기와 돌아봄 없이는 스쳐가는 부고들 속에서 무덤덤하게 지쳐갈 것이기 때문이다. 남겨진 여러 의료 소모품들이 우리를 통해 다른 필요한 분들께로 흘러가는 것처럼, 그분과의 시간 역시 우리를 통해 다른 분들께로 흘러가게 될 테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환자분의 유품인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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