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부동산 정책 미루면 집값 못 잡는다

안호기 논설위원

“공급은 부족한데 인건비, 자재비, 땅값은 동시에 오르고 있다” “집값 폭등이 올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 상황을 감안하면 빨리 사는 게 부동산을 싸게 구입하는 방법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한 언론사가 주최한 행사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이다. 집값이 오를 테니 빨리 사두라는 것이다. 당장 집을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처럼 부추긴다. 지난 몇 년간 집값 급등기에 매수 타이밍을 놓친 사람이라면 솔깃해할 얘기들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집값이 꿈틀대고 있다. 각종 통계에서 일부 지역 오름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동향을 보면 지난달 28일 기준 서울 동남권(서초·강남·송파·강동) 아파트 매매가격이 0.01% 올라 10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기로 한 용산구 아파트값도 9주 만에 오름세로 전환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등 1기 신도시도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 또는 상승으로 돌아섰다.

강남을 중심으로 실거래가도 뛰고 있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동산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선 직후인 지난달 10~28일 서울에서 거래된 149건 중 46건(30.9%)이 직전 최고가보다 집값이 올랐다. 최고가 대비 하락한 아파트는 100건(67.1%)으로 여전히 하락 추세인 곳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집값이 가장 많이 뛴 상위 10곳 아파트 중 6곳이 강남구와 서초구에 집중돼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주목받고 있다. 강남구 삼성동 헤렌하우스 전용면적 217.86㎡형이 16억원 상승하는 등 이들 지역 6곳 평균 상승폭은 9억2800만원이었다.

주택시장 여건이 달라진 게 없는데도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국민의힘과 윤 당선인이 내놓은 부동산 관련 공약의 영향이다.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강남권에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두 후보의 부동산 공약을 다시 들여다봤다.

공급물량을 확대해 집값을 잡겠다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공통적이다. 윤 당선인은 5년간 주택 25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이 후보는 311만가구를 공약했다.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기준 완화,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 공시가격 제도 개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 등 놀랄 정도로 흡사했다. 정당과 후보 이름을 지우고 보면 어떤 공약이 민주당이고 국민의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디딤돌로 활용했던 두 후보가 경쟁하듯 규제 완화 카드를 내민 탓이다. 집값을 잡는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치울 기세였다. 최근 서울 일부 지역 집값이 올랐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었다. 누가 됐어도 상승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공약과 관련해서는 여야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주택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전망해 결과를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건설업종지수는 올해 최저점이었던 지난 1월27일부터 대선 직전인 3월8일까지 15.9%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0.3% 올라 보합 수준이었다. 대선이 끝난 뒤 건설업종지수는 코스피지수와 거의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선 호재가 사라지면서 건설업 상승세도 멈췄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명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무주택자에게 내집 마련을 쉽게 하고, 자가 소유자에게는 보유·거래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엉뚱하게 부동산 기득권층 기대만 키우고 있다. 보다 빠르게 더 큰 평형을 지을 수 있게 된 강남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이 오르고 있다. 더 많은 주택을 지어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건설사 주가도 뛰었다.

강남권에서 꿈틀대는 집값 상승세가 확산된다면 집값 안정은 수포로 돌아간다. 윤 당선인은 청년 원가주택과 역세권 첫집, 공공 분양 및 임대 등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주택 121만가구 공급을 공약했다. 오름세 심리가 확산하기 전에 강남권 집값 상승세를 찻잔 속에 가두려면 공공주택 공급이 속도를 내야 한다. 민주당은 대선 공통공약 추진기구 구성을 제안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후보의 기본주택 140만가구 공급은 사실상 공통공약이다. 인수위와 차기 정부는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 바란다. 부자들만을 위한 정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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