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믿을 게 하나 없다는 불평을 듣다보니 나도 지친다. 그래서 철지난 이야기를 꺼내 본다. 지난 대선에서 지상파 출구조사 팀이 0.6% 차이로 당선자를 예측한 이야기다. 당선자가 아닌 후보들에게 투표한 나머지 51%에게는 섭섭한 결과였지만, 출구조사와 개표결과를 맞춰본 시민은 그래도 뭔가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가 하나는 있다는 걸 경험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사실 출구조사가 맞았다는 게 뉴스가 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출구조사란, 교과서대로만 한다면 잘못되기가 어렵다. 역사상 최악의 선거조사로 알려진 1992년 영국 총선에서도 ITN이 의뢰한 해리스 출구조사는 실제 결과에 근접했다. 거액의 비용을 투자해서 교과서에 있는 방법을 적용해서 투표자를 대상으로 조사하기에 잘해도 칭찬받기 어렵다.
그러나 뭐든지 어긋나는 게 일상이고, 어떻게 해도 망한다는 비관이 유행하는 한국 정치에서 그래도 교과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라도 있다는 걸 확인해서 반가운 심정이랄까. 나는 1997년 대통령 선거 이래 지상파 선거예측 조사를 도우며 별 일을 다 봤지만, 이번 출구조사처럼 결과를 받아들고 담담했던 적이 없다. 선거 전 전화조사 결과들이 의심스럽게 널뛰기하고, 이른바 ‘깜깜이’ 기간 동안에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전화로 전해들은 결과보고는 예상대로였다. 사전투표자와 당일투표자 간 지지율 격차가 컸다.
사전투표자는 당일투표자와 비교해서 인구구성도 투표성향도 다르다. 사전투표자 중에는 젊고 진보적인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출구조사로 이들을 접촉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지난 10년간 사전투표자의 비율은 증가일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총선에서 사전투표자 비중은 21%였는데, 2020년에는 40%로 증가했다. 이 비중이 계속 높아져 대통령 선거에서는 약 50%에 육박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이번 출구조사는 사전투표자를 휴대전화로 조사해서 지지율을 추정한 방법이 성공적이었다. 지난 3월31일 한국방송협회의 출구조사팀이 평가회의에서 확인했는데, 만약 이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지 않았더라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5.6%점에 달한다고 공표할 뻔했다. 당선자 예측에는 문제가 없지만, 오차한계를 한참 벗어나는 오류를 범할 뻔했다.
새로운 방법에 따라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해 유권자 3만7000명을 접촉하고, 그중 1만18명의 응답을 얻었다. 응답자 가운데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5183명의 후보지지 경향을 구해 이를 선관위가 제공한 사전투표자의 성연령 구성비율에 따른 차별적인 지지율로 환산했다. 이 지지율을 당일 출구조사 결과와 결합해 최종예측치를 발표했다.
돌이켜보면 이번 출구조사가 성공한 까닭은 작년 4·7 보궐선거를 준비하면서 사전투표자 지지율을 구하는 방법을 미리 검토한 데 있다. 증가하는 사전투표자에 대비하기 위해서 추가로 비용을 들여 전화조사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고 합의했던 게 결정적이었다. 그때 보궐선거에서 안심번호를 사용한 전화조사 자료를 구해서 전통적인 출구조사 예측치와 비교해서 검토했기에, 이번 출구조사에서 새로운 방법을 과감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잘 돌아가는 집구석이 대체로 이와 같다. 예견된 어려움을 앞두고 그저 각자 떠드는 데 그치지 않고, 대처 방안을 모색한다. 논의가 모아지면, 실제 비용을 들여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분석을 거쳤기에 임박한 어려움 앞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검토한 방법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이게 말이 쉽지, 항상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전문가랍시고 모여 대안 모색도 없이 그저 떠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비용을 지불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인색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미리 검토한 일도 무시하고 멋대로 결정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