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비치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성소수자 거리축제)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플로리다주가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한 후 미국 내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소 12개 주에서 관련 법안을 추진 중이다.
NPR은 “앨라배마, 오하이오, 루이지애나 등이 플로리다에서 최근 통과된 일명 ‘게이 언급 금지법’(Don‘t say gay)을 모방한 법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텍사스주도 다음 회기에 유사한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플로리다주는 최근 유치원과 초등학교 1~3학년 교실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한 수업과 토론을 금지하는 ‘부모의 교육권리법’ 시행을 확정했다. 지난 1월 플로리다 주의회에서 발의된 이 법은 지난달 론 드샌티스 주지사가 서명을 완료해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미국내 차별금지 활동가들을 비롯해 진보 진영에서 ‘게이 언급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성소수자(LGBTQ)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의 기본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성소수자들을 박해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주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학교에서 성 정체성 또는 성적 취향에 대한 주제를 논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NRP는 전했다.
론 드샌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 2월 24일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열린 보수당 정치 행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지난달 말 유치원과 초등학교 1~3학년 교실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한 수업과 토론을 금지하는 일명‘게이 언급 금지법’ 시행을 확정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정부는 최근 여권에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표기하는 것을 공식화하고 아동과 청소년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조기에 확인하도록 하는 ‘성별 확인 조기 관리’를 지원하는 등 성 다양성을 지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우세한 주에서는 성소수자를 옥죄는 법안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앨라베마 주의회는 지난 7일 의사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 확인을 돕는 의료적 행위를 불법화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1~5학년 교실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학교 조기 교육을 금지하는 별도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규정한 플로리다의 법안보다 더 강화된 것이다. 애리조나주는 학교 교과과정을 개정해 젠더 정체성이 아닌 생물학적 성에 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아이오와주에선 젠더 정체성 관련 교육을 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오클라호마주에선 학교 도서관에 성이나 성적 활동에 초점을 맞춘 서적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캔사스주에서는 지난달 동성애 교재를 가르치면 경범죄로 다루는 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미국 내에선 이처럼 학교에서의 성 다양성 교육을 억제하는 현상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자신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 확고히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의 가시성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에 간접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조항이 학생들에게 젠더 다양성과 정체성 교육을 아예 금지하는 방향으로 노골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루이지애나를 포함한 6개 주에서는 이미 교사가 학생들과 LGBTQ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과 여부를 제한하는 ‘프로모션 동성애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에임즈 시먼스 듀크대 법대 선임 강사는 “이러한 법안은 정치적 이득을 위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을 반복적으로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인종차별과 노예 제도, 가부장제, 성차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닐 래퍼티 앨라배마 주 의원이 지난 7일 트랜스젠더 법안 토론회에서 반대 연설하고 있다. 앨라배마 주 의회는 이날 의사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 확인을 돕는 의료적 행위를 불법화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1~5학년 교실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조기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AP연합뉴스
학교에서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들로 인해 어린 성소수자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쉬운 환경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성소수자 자살 예방 조직인 ‘트레버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의 13~24세의 LGBTQ 중 42%가 자살 시도를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3만5000명의 설문 대상사 중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낮은 자살 시도율을 보였다고 밝혔다.
워싱턴대학의 아지 레스타 조교수는 “이러한 법안들의 제도화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퀴어인 어린이와 교사를 위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모든 의학적 증거를 거스르는 것”이라며 “트랜스젠더 혐오과 동성애 혐오가 설 자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