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난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11일(현지시간)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퇴진 촉구 시위에 참가한 한 남성이 대통령 관저 입구를 가로막은 바리케이드 위에 서서 국기를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한 스리랑카가 12일(현지시간) 일시적인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를 선언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기다리는 동안 510억달러(약 62조9000억원) 규모의 대외부채 상환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것이라 밝혔다. 스리랑카 중앙은행의 P. 난달랄 위라싱헤 총재는 “하드 디폴트(민간 채권단이 전면 손실을 보는 실질적 디폴트)를 피하고자 대외부채 지급을 일시 유예한다”며 “제한된 외환보유고를 연료와 같은 필수 품목을 수입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스리랑카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19억30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비해 스리랑카의 올해 총부채 상환 예정액은 70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AP통신은 스리랑카가 향후 5년간 갚아야 할 대외채무가 250억달러(약 31조원) 규모라고 전했다. 피치 등 주요 신용평가사는 지난해 말부터 이미 스리랑카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상태다.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스리랑카는 지난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 사건과 지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관광객이 급감하며 외화보유고가 바닥나면서 경제난에 직면했다. 스리랑카는 관광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차지하는데 팬데믹 이후 관광업 종사자 2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 힘들어지자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2년간 외환보유액을 거의 70% 소진했다.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면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벌인 것도 대외채무를 늘리며 경제 불안정성을 키운 요소 중 하나다.
정부는 민생을 살리겠다며 통화량을 늘리고 감세 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물가 급등과 외화 부족으로 이어지는 등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외화 부족으로 식품, 의약품, 연료 등 필수품 수입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민생 경제는 파탄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에는 종이 부족으로 학생들의 진급 시험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수개월째 이어진 경제난에 분개한 시민들은 결국 전국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비상사태와 주말 통행금지 등을 발동했다가 해제했다. 당국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야당에 거국 중립내각 구성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당은 거국내각 제안을 거부한 채 대통령과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