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연설 ‘텅 빈 국회’…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국제부 | 김유진
김유진 국제부 기자

김유진 국제부 기자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연설은 세계가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전시 지도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인도적 위기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을 하나로 단합해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하며 우크라이나에는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추진 중이라고 알려진 지 거의 3주가 지나서야 성사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외국 의회 연설은 한국이 24번째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청받았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한 것 치고는 늦어도 한참 늦은 결과다.

늦었다면 그만큼 더 제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본회의장도 아닌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연설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전체 300명 중 약 60명에 불과했다. 곳곳에 텅 빈 좌석을 보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심지어 연설 도중에 휴대폰을 확인하는 의원의 모습도 사진에 담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진심 어린 예우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보다 앞서 그를 초청해 회의장을 가득 메웠던 미국, 영국, 일본 의회에서 터져나온 기립박수는 여의도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의원 자격으로 연설에 참석해 기립박수를 치고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던 것과도 대비됐다.

이 와중에 12일 RT 등 러시아 언론들은 한국 국방부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무기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고 헤드라인으로 보도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선전도구 역할을 하는 매체들로선 한국 정부의 입장이 내심 반가웠던 모양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는 외교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주체다. 하지만 이날 국회의 모습에서는 외교적 전략도, 명분도, 실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냉전시대 최초의 열전”(인류학자 권헌익)을 겪었고 분단의 아픔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의미로 각자의 옷에 작은 파란 리본이라도 달고 참석했더라면 어땠을까. 본회의장을 가득 채운 의원들이 다 함께 박수를 보냈다면 신냉전시대의 첫 열전을 지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연대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전쟁 중인 나라의 지도자를 불러놓고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국회, 공감능력만 결여된 줄 알았는데 정치감각도 제로인 국회에 다시 한번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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