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후보토론만큼 후보들의 자질과 정책들을 제대로 비교 검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 언어와 사고와 세계는 표상과 대리의 관계에 있다는 말이 있다. 토론에서 후보자의 언어가 그의 사고를 의미하며 그가 바라보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
‘20대 대통령 선거 사후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46%가 지지 후보를 결정할 때 참고한 정보원으로 후보토론을 꼽았다. 후보별로 보면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유권자는 59%가,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34%만 후보토론을 참고했다고 답했다. 지난 대선에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후보토론을 3회만 주최했다. 관련 법규에는 대선의 경우 3회 이상 주최하게 되어 있는데, 왜 더 이상 하지 않았을까?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2004년에 선거관리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그 무렵 나는 관계자들을 만나 여러 차례 후보토론의 개선방안을 제시했던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토론의 횟수와 진행방식이다.
20대 대선도 후보토론의 횟수가 지나치게 적어 중요한 정책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후보토론의 영향력이 높지 않다는 데에 있다. 어떻게 하면 후보토론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까? 토론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20대 대선 후보토론은 사회자의 공통질문에 한 번씩 답하기,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주도권 토론 등으로 이루어졌다.
초창기 선거 후보토론은 주로 사회자의 공통질문에 후보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한 1차 발언, 2차 발언, 3차 발언 등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후보들은 순서에 맞추어 발언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이 가져온 자료를 뒤적이느라 다른 후보들의 발언을 경청하지 않았다. 토론이 겉돌 수밖에 없었다.
지난 후보토론에서 문제점은 우선 후보가 네 명인데도 시간총량제 토론이 주된 방식이었다는 데에 있다. 일정한 주제도 없이 그야말로 도깨비시장처럼 산만하고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시간총량제 토론은 양자 간 논쟁에 적합하다. 시간총량제는 발언시간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하나의 장치일 따름이다.
모름지기 공정한 토론이란 발언시간의 공정성 못지않게 발언횟수의 공정성과 발언순서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나아가 발언의 공정성 못지않게 후보를 비교 검증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 답은 후보가 세 명 이상일 경우 바로 다자 간 논쟁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다자 간 논쟁이 형성될까? 후보가 4명일 경우 예컨대 각기 1분30초씩 발언기회를 네 번 부여한다면 총 24분이 소요된다. 경제위기를 주제로 한다고 가정하자. “1차 발언입니다. 누가 먼저 말씀하시겠습니까?” 신청자가 없으면 첫 번째 발언자는 사전 추첨에 따라 정해진 대로 한다. 첫 번째 발언이 끝난 후 “두 번째로 누가 말씀하시겠습니까?” 신청자가 없으면 발언을 끝낸 후보가 다음 발언자를 지명한다. 두 번째 발언이 끝난 후 “그다음 누가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4명의 1차 발언이 끝나면 6분이 소요된다. “이제 2차 발언입니다. 누가 먼저 하시겠습니까?” 신청자가 없으면 1차 발언 마지막 발언자가 2차 발언 첫 번째 발언자를 지명할 수 있다. 발언 시간에 후보들은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고 다른 후보에게 질문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진행하게 되면 후보들은 다른 후보의 발언을 경청, 메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논쟁이 붙게 되고, 이때의 논쟁은 다자 간 논쟁이라 네 후보를 동시에 비교 검증할 수 있게 된다. 4차 발언까지만 진행해도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난다.
오는 6월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토론 방식이 개선되어 후보토론이 중요성을 갖게 되면 결국 국가가 부담하는 선거운동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선거 후보토론이 재미있고 유익하게 진행됨으로써 후보들을 제대로 비교 검증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