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오는 19일 열린다. 인플레이션 격변기에 물가 파수꾼 한은의 수장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다. 대출·예금금리에 신경이 곤두선 가계와 기업, 금융시장 관계자들이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주요 관심은 한은 통화정책 독립성에 대한 이 후보자의 의지다. 중앙은행은 어느 나라건 정부와 긴장 관계에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력은 표를 의식해 경기를 띄우려 하기 마련이고 중앙은행을 통제에 두고 싶어 한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정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신뢰가 훼손되고 금리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게 된다는 데 있다. 통화가치를 지키려는 신념과 의지가 중앙은행 수장의 중요한 자질로 꼽히는 이유다.
이 후보자는 지난 1일 자신의 통화정책 성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데이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데이터가 나타난 상황에서 어떻게 가장 정책 조합을 잘 이루고 정부와 조율을 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독립성을 강조해온 중앙은행의 역할이 이제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지난 10일 언론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보자. 물가정책을 묻는 질문에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십분 존중돼야 한다. 다만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 경제정책과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미션이 있으며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의 만남이 뉴스가 안 될 정도로 자주 만나겠다”고 했다.
둘 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예상대로 무난하게 통과한다면 정부와 한은의 ‘찰떡 공조’를 예고한 것이기에 우려스럽다. 정부와 한은 간 소통이나 조화, 공조체제 강화는 외견상 그럴듯하나 실제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인상을 시장에 줄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추 후보자는 금융정책국장으로 함께 일했던 관계이기도 하다. 정부와 한은이 일심동체로 움직인다고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 볼까. 한은 독립성이 전제되지 않은 정부와의 정책공조는 위험한 것 아닌가.
이 후보자가 지난달 24일 한은을 통해 발표한 총재 지명소감에서 “성장, 물가, 금융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라며 성장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눈길을 끈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고용 등 다른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원론적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 물가안정을 한은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규정한 한은법 1조와 달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헌장은 고용의 최대화, 물가의 안정, 적정한 장기이자율의 추구를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후보자의 발언에서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느꼈다면 과도한 것일까.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척하면 척’ 발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는 2014년 9월 호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중 이주열 한은 총재와 만난 뒤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굳이 얘기를 하지 않아도 한은이 알아서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겠느냐는 뜻이었고 실제 다음달 한은은 금리를 내렸다. 기획재정부 차관이나 금융위 부위원장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한은법에 규정된 열석발언권은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기재부와 한은이 글로벌 금융위기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마찰을 빚자 열석발언권 카드를 꺼냈다. 보수정부에서 한은 독립성을 침해했던 사례가 윤석열 정부에서 반복될 것이라 예단할 근거는 아직 없다.
다만, 성장 담론을 중시하고 기업 입장을 잘 헤아리는 보수정부의 특성상 집권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은의 매파적 성향을 부담스러워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 후보자가 국제금융계의 유명 인사이긴 하나 시장과의 소통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중수 한은 총재는 유명 경제학자였지만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이유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한은 업무 경험이 없는 외부 출신 인사의 한계였을 것이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한은 수장으로서 적격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