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제시하고, 논증을 통해 이해관계의 합리적 조정을 도출하는 공론장의 이상을 언론이 매개하는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토론이다. 그런데 이처럼 토론을 통한 공론장 모델에 던져진 질문 중 하나는 “모두가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가?”였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낸시 프레이저는 공론장 모델이 가정하는 참여의 권리에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의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언론이 공론장의 구성에 해악을 미쳐 궁극적으로 정의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공론장에 참여하여 낸 고유한 목소리를 언론의 틀에 따라 특정한 부분만 인용하여 편견을 재창출하는 경우이다. JTBC <썰전 라이브>를 통해 이루어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에 관한 토론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 중 하나가 ‘시민의 불편’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토론에 참여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말 중에서도 이제까지 언론이 이 사안을 대해온 방식, 즉 시민의 불편과 장애인의 권리를 대립적으로 배치했던 틀에 맞는 부분을 채택하여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도는 언론이 배제된 자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였다는 명분은 챙기면서 그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된 정의의 요구를 우리 사회가 경청하기 어렵게 만든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시민의 불편을 대립시키는 자체가 장애인을 시민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구도이다. ‘시민이 불편해도 참아야 한다’ 혹은 ‘시민이 불편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찬반 구도를 만들어 이동권과 시위의 권리가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권리라는 대전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이 권리에서 장애인이 배제되었던 긴 역사를 반성하고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성찰하기 어렵게 만든다. 언론 보도가 이러한 틀을 고수하게 되면 결국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주입한 후 이를 바탕으로 하는 편견을 산출하여 이것이 여론이라면서 시민의 시민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시켜주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해당 토론 프로그램은 언론이 구성해 온 공론장이 이제까지 배제해온 것이 무엇인지를 물리적 자리 배치에서부터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마이크 앞에 서기 위해 주어진 물리적 공간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음에도 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자료를 통해 차별의 역사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토론의 조율 방식이나 토론을 보는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시청각적 자료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토론 프로그램 이후 부각된 것은 토론에 참여한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의 말과 그에 담긴 차별적 인식들이다.
장애인 권리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정치인의 차별적 언사를 언론이 그대로 옮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말을 옮기면, 이 말은 사회 내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포털에 게시된 해당 뉴스에는 정치인의 말에 동조하는 댓글이 늘어나고, 여타 온라인 공간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언론은 종종 이러한 발화들을 모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근거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공론장 참여의 권리는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들리게 하는가와 관련된다. 언론이 이러한 참여의 권리를 보장하는 공간이 되려면 언론사 스스로 차별적인 틀을 갖고 사안을 대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시민의 범주를 제한해온 차별에 언론이 나서 차별의 정당화 자원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