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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국’ 디즈니는 왜 정치적 당파논쟁에 휩싸였나

월트디즈니 로고. 디즈니가 어린학생들에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플로리다주의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자 소셜미디어에서 ‘디즈니보이콧’을 주장하는 보수 지지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AP연합뉴스

월트디즈니 로고. 디즈니가 어린학생들에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플로리다주의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자 소셜미디어에서 ‘디즈니보이콧’을 주장하는 보수 지지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AP연합뉴스

100년간 ‘꿈과 환상’을 기반으로 거대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구축해 온 디즈니가 정치적 논쟁 한복판에 서게 됐다. 미국에서 성소수자(LGBTQ) 이슈를 둘러싼 당파 싸움에 휘말리며 진보와 보수 양측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며 중립적 입장을 취해온 디즈니는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했다.

디즈니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쟁점은 플로리다주가 얼마 전 시행을 확정한 이른바 ‘게이 언급 금지법’이다. 이법은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3학년에게 성적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강화한다는 진보진영의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디즈니에도 불똥이 튀었다. 디즈니 운영진이 법안 발의 초기에 뚜렷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 직원들이 파업과 항의 시위에 나선 것이다. 직원들과 지역 사회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밥 차펙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그동안의 침묵을 사과하고 성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힘쓰겠다는 성명을 내놨다. 이와함께 플로리다주에 대한 모든 정치자금 후원을 멈추고 성소수자 인권 단체 등에 500만달러(약 62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플로리다 주의원들이 디즈니사가 플로리다에서 누리고 있는 각종 법적 혜택을 박탈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디즈니 출연자인 니콜라스 말도나도가 지난 3월 22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부에나 비스타 호수에서 열린 직원 파업에 참가하면서 성소수자(LGBTQ) 문제에 대한 회사의 입장에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디즈니 출연자인 니콜라스 말도나도가 지난 3월 22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부에나 비스타 호수에서 열린 직원 파업에 참가하면서 성소수자(LGBTQ) 문제에 대한 회사의 입장에 항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플로리다주의 ‘게이언급금지법’을 찬성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지난 16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월트 디즈니 월드에서 법안 찬성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플로리다주의 ‘게이언급금지법’을 찬성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지난 16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월트 디즈니 월드에서 법안 찬성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여름 디즈니월드가 관람객 안내 방송의 문구를 기존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 boys and girls)에서 ‘모든 꿈꾸는 이들’(dreamers of all ages)로 변경한 것을 두고도 진보와 보수 진영이 맞붙었다. 진보 진영은 생물학적 성이 아닌 젠더(사회문화적 성)에 중점을 둔 디즈니의 변화에 박수를 보냈지만 보수 진영은 ‘디즈니보이콧’ 운동을 벌이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이같은 현상에 대해 ‘모두를 위한 가치’를 추구해 온 디즈니가 민감한 현실 문제와 마주하며 위기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가족 친화적인 콘텐츠를 통해 정치·문화적 이슈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해 온 디즈니의 중립적 태도가 정치적으로 양분되는 최근 미국 사회의 흐름에서 양 정파 모두에게 비판받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이 ‘마법 왕국’으로 서서히 유입되고 있다”며 “디즈니는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려다 모두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디즈니가 처음부터 평등과 다양성을 견지한 PC 행보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노조에 반대하고 자유주의 가치에 반기를 들었던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졌다. 2005년 로버트 아이거 전 CEO 취임 이후 다양성과 포용성을 앞세운 ‘변신’을 시작한 디즈니가 작품에 공식적으로 성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은 2017년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에서였다. 디즈니는 최근까지도 영화 <라이트이어>에서 성소수자의 키스신을 삭제하고, 작품 속 성소수자 캐릭터를 홍보용으로 이용한다는 ‘퀴어베이팅’(퀴어 낚시질) 논란에 휩싸이는 등 혼란스런 행보를 보였다. 마법의 세계에 갇혀 정치·사회적 논쟁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왔던 디즈니가 언제부터 사회적 정의를 각성했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밥 차펙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고 경영자. 로이터연합뉴스

밥 차펙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고 경영자.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다양성을 작품과 회사경영에 투영하려는 방침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2017년 <미녀와 야수> 이후 <어벤져스:엔드게임>(2019년), <토이 스토리 4>(2019년),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20년), <온워드:단 하루의 기적>(2020년) 등 다수의 작품에 성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최근에는 앞으로 제작할 작품의 주인공 절반 이상은 성적, 인종적 소수자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만들겠다는 디즈니 고위직의 발언이 전해지기도 했다. 취임 당시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던 차펙 CEO는 지난달 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다양성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는 바로 기업으로서 우리의 선언”이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트윗이나 로비 활동보다 더욱더 강력하다”고 밝혔다.

디즈니는 앞으로도 ‘모두를 행복하게 할’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2023년 설립 100주년을 맞는 디즈니가 마법 세계를 벗어나 현실 세계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 나갈지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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