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들’과 ‘윤호중들’, 사라진 책임정치

이용욱 논설위원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얘기다. 오만과 위선, 내로남불로 탄핵당한 세력에게 5년 만에 정권을 내줘 놓고도 제대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개혁을 내세워 사회적 합의가 덜 된 현안들을 밀어붙이는 행태도 그대로다. 0.73%포인트 차 패배가 0.73초의 반성으로 이어진 것인가. 민주당 주변을 배회하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은 책임지지 않는 인사들의 ‘정신승리’ 주문(呪文)일지 모른다.

이용욱 논설위원

이용욱 논설위원

당 대표와 원내대표였던 송영길·윤호중 두 사람이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은 한마디로 당내 책임정치가 실종됐다는 증거다. 물러났어야 할 윤호중 원내대표는 도리어 비대위원장으로 체급을 올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인다. 그는 최근 현충원 방명록에 “특권 없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민주당이 더 개혁하고 더 혁신하겠다”고 썼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수완박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형사사법체계를 바꾸는 중대한 문제를 임기 20여일 남은 현 정부 내에서 종결짓는다는 발상은 비상식적이다. 지난 5년 동안 무엇하다 뒤늦게 서두르는가.

윤 비대위원장은 원내대표 시절 여러 쟁점법안을 밀어붙인 당사자다. 무슨 일이든 그가 앞장설수록 민주당의 독주를 떠올리는 시민이 늘 수밖에 없다. “검수완박 이슈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이 시점에 국민의 최고 관심사가 검찰 문제인지 자문해야 한다”는 스물여섯 살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의 말이 백번 옳다. 윤 비대위원장이 비공개 최고위에서 박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청년 비대위원들에게 언행을 조심하라고 말했다는데, 너무나 실망스럽다. 쇄신하기 위해 영입한 청년 정치인의 목소리가 묻히고, 윤 비대위원장 발언만 들리는 것은 민주당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둘러싼 논란도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 패배에 책임지고 사퇴했다. 인천에서 5선 의원과 시장을 지낸 그는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런 송 전 대표가 한 달도 안 돼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것은 정치를 희화화한다. 그럼에도 그는 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가 자신을 공천배제(컷오프)하자 “자해행위”라며 반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전 후보의 정치 복귀를 반대하는 선제타격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출마는 이재명계의 뜻에 따른 것인데 반대파가 이를 저지하고 있다며 계파갈등의 결과로 몰아간 것이다. 송 전 대표의 주장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이재명계인 정성호·김남국 의원이 송영길 컷오프를 비판한 것을 보면 터무니없는 말은 아닐 터다.

실제 송영길 출마 논란은 친이재명계의 ‘이재명 보호’ 시나리오와 연계돼 있다는 말이 있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면 이재명 전 후보가 송 전 대표 지역구(인천 계양) 보궐선거에 나선다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에 대비해 이 전 후보가 의원 배지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재명계 다수의 생각이 아니고, 이 전 후보 뜻과 무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정에 적합한 후보를 찾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우선 고려하는 세력이 있고, 이것이 송영길 소동의 원인이라면 여간 한심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반성하지 않는 ‘윤호중들’과 ‘송영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주민 의원은 임대차 3법을 대표발의한 데다 법안 통과를 앞두고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 임대료를 큰 폭으로 인상해 논란이 됐고, 이 때문에 공천배제 대상이 됐다. 충북지사 후보로 단수추천된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정부가 고위공직자에게 ‘1가구 1주택’을 권고하자 서울 반포 아파트를 남기고 지역구인 충북 청주 아파트를 매각해 논란을 빚었다. 용퇴론에 침묵하는 86 의원들, 강성지지층을 의식해 당 역행에 입닫은 의원들도 ‘윤호중들’과 ‘송영길들’에 속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민주당은 대선 이전의 오만한 모습에서 달라진 게 없다.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에서도 쓰디쓴 결과를 맛보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윤호중들’과 ‘송영길들’을 전면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아’와 ‘피아’를 가르고, 경쟁자는 무조건 적으로 돌리는 정국운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민심 앞에 겸손하라. 그래야 출범도 하기 전에 독선과 독단의 징후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는 힘 있는 야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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