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세운5구역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기적으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일대를 고밀도 재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주변을 연결한 공중 보행길도 걷어낸다. 고 박원순 시장이 상가 보전을 중점에 두고 추진했던 재생 사업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흔들린 세운상가가 다시 한번 혼돈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 시장은 21일 사대문 안 도심을 고밀도로 개발하는 대신 공공기여를 받은 공간에 녹지를 대폭 확보하겠다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전략에 따르면 첫 사업 대상지인 종묘~퇴계로 일대 개발의 중심에는 세운상가가 있다. 지난해 오 시장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10년 전 시장 재임 시절에 세웠던 개발 계획으로 되돌리겠다고 언급했던 곳이다.
원도심 개발로 녹지를 확보하는 데 세운상가는 핵심축이다. 세운상가 주변의 171개 정비구역을 20개 내외로 재조정해 재개발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개발 주체는 세운상가를 전부 혹은 일부 매입해 시에 기부채납해야 한다. 시는 이를 수용해 녹지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도심 개발로 얻은 이익으로 상가의 일정 부분 매입해 허무는 것을 조건으로 높이, 용적률, 건폐율 등 인센티브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운상가 소유주가 지분 참여 방식으로 공동 재개발을 추진할 수도 있다. 불가피한 경우 시가 직접 매입하는 방식도 검토하기는 하지만 오 시장은 “(상가 수용에)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2009년 오 시장이 세운상가 주변 통합정비 사업을 추진했는데 당시 1조원이 넘는 상가 앞 공원 조성 재원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세운상가와 함께 청계천 위쪽으로 세운·청계·대림상가를 잇는 350m 공중보행로도 철거된다. 2017년 시작해 막바지 연결 작업 중인 이 보행로에는 지금까지 1000억원이 투입됐다. 오 시장은 “이제 겨우 완성돼 활용을 앞두고 있어 (철거한다는 것이) 민망하지만 철거돼야 할 운명”이라며 “(녹지)계획에서 공중 보행로가 대못이 될 수밖에 없다. 대못은 뽑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세운상가가 철거되기까지는 관련 조례 제정과 복잡한 소유관계를 정리한 뒤 서울시가 매입과 수용 절차를 마무리하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다. 임차인에 대한 보상, 퇴거 협의도 필요하다. 오 시장은 “세운상가를 허무는 게 10년 내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이 때문에 보행로도 앞으로 10년 정도, 그동안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는 서울시가 보존에서 철거로 다시 방향을 바꾸면서 다시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 일대는 1988년 세운상가 2·3구역 재개발계획, 1990년대 도심재개발 기본계획(1994·1996·2001)을 거쳐 2003년 도심형 재개발사업 모델 개발과 2009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2015년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등 시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비 계획이 수립됐다. 개발 방식, 정비 대상, 규모 등은 당시 도시계획의 흐름과 시장의 정책 기조에 따라 변경됐다. 30년간 재개발 대상지라는 낙인, 언제나 계획은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은 입주 상인들과 주민들의 몫이었다.
다시 새 계획안이 발표되면서 지역 내 갈등도 우려된다. 당초 전면 철거안이 도시의 역사성을 살려 보존하는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틀었던 데는 토지주, 임차인, 주민들 사이의 입장차가 컸기 때문이다. 이에 정비구역도 170개 이상의 작은 필지로 나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