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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 고마워!

입력 2022.04.23 03:00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인솔하는 수녀님의 뒤를 따라 “안녕!”과 “올라!”를 외치며 그림책 전시장에 들어온 것은 아침 10시쯤이었다. 순간 말하는 레몬들이 굴러오는 줄 알았다. 잠을 잘 자고 난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상쾌하고 단단하다. 이틀 넘게 비행기를 타서 몽롱한 상태였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나는 지금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 우리 그림책을 알리는 일을 돕는 중이다. 100권이 넘는 우리 그림책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함께 왔다. 해발 2450m인 유서 깊은 이 도시에서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백두산 천지에 앉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에 오른 김효은, 라가치상을 받았던 박연철, 정진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가 안데스산맥의 구름 모자 아래에서 독자들을 만나러 왔다. 한국관 테마는 공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준비한 그림책관은 ‘목소리의 어울림’이 주제다. 그림책은 세상의 여러 목소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작가를 성장시키는 것은 낯선 이미지, 다른 목소리를 겁내지 않는 용감한 독자들이다.

그런데 첫날 아침부터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어린이들이 손님으로 찾아온 것이다. 우리말 인사를 미리 배우고 왔는지 눈만 마주치면 “안녕!”을 외쳤다. 생소한 한글이 적힌 그림책을 탐색하느라 떠들썩했다. 한 아이가 헤어질 때 말하는 “아디오스!”는 뭐냐고 묻기에 그것도 똑같이 “안녕!”이라고 알려줬다. 그때 아이들의 눈에서 상당한 흔들림을 읽었다. “어떻게 만날 때랑 헤어질 때 같은 말을 할 수가 있지?”하고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몇 분 뒤 나는 그 많은 어린이들에게 둥글게 둘러싸인 채 억양이 다른 두 가지 ‘안녕’의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된 김에 우리말을 몇 마디 더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말이 좋을까?

콜롬비아에 오기 전까지 몰랐던 것은 이 나라에 3642종 이상의 나비가 산다는 사실이었다. 250년 동안 나비를 연구해온 콜롬비아의 학자들은 작년에 연구서를 펴내어 자신들이 나비 다양성 세계 1위임을 입증했다. 이뿐만 아니라 콜롬비아는 생명 다양성 세계 2위의 국가다. 누가 내게 돌아올 때 대표적인 콜롬비아 커피를 사오라길래 그런 커피가 있냐고 물으니 땅의 높이와 토질에 따라 셀 수 없는 맛의 콜롬비아의 커피가 있다고 했다.

이 나라의 커피 중에는 “여성의 커피”가 있다. 60년 내전을 거치며 수많은 콜롬비아 여성이 가족을 잃은 채 반인권적 범죄의 표적이 됐다. 분쟁지역의 피해 여성들이 자립을 위해 생산하는 커피가 “여성의 커피”다. 이 나라에는 나비 못지않게 다양한 커피조합들이 있다. 무기를 손에서 내려놓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릴라들의 커피는 “희망의 열매”라는 이름으로 팔린다고 한다. 다른 존재들이 어울리며 살아가면 생명도, 공동체도 견고해진다.

이번에 같이 온 박연철 작가의 그림책 중에 ‘안녕, 외계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보고타의 어린이들에게는 내가 외계인이다.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중에는 ‘벽’이라는 작품이 있다. 언어가 다른 우리 사이에는 벽이 있다.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중에 ‘나는 지하철입니다’라는 작품이 있다. 누군가에게 지하철은 벽이다. 누군가에게는 벽을 허물고 지하철에 타려는 이들이 외계인으로 보일 것이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에는 파도와 노는 어린이가 나온다. 맞다. 우리는 파도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보고타의 어린이들에게 더 가르쳐 줄 말을 결정했다. “친구”와 “고마워”였다. “안녕!”과 더불어 이 말들만 있으면 어울려 놀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몸이 있고 목소리가 있고 국경을 넘어 큰 바다를 건너 온 아름다운 그림책들이 있다. 아이들은 금방 그 말들을 배웠다. “안녕, 친구, 고마워!”를 외치며 손을 흔들고 신나게 다음 전시장으로 떠나갔다. 그 목소리가 오래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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