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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여성할당제와 능력주의

입력 2022.04.25 03:00

수정 2022.04.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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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는
새 집권자들의 능력주의 선호는
그에 따른 정치적 이익 알기 때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서도
새 정부 어떤 모습 보일까 조마조마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1981년 여성으로는 미국 최초로 연방대법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1952년 스탠퍼드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펌들이 변호사로는 채용하지 않고 법률비서직만을 제의하자, 공직을 찾아 산마테오 카운티의 검사보로 일해야 했다. 보수도 없고 자기 사무실도 따로 없는 조건이었다. 두 번째로 여성 연방대법관이 된 루스 긴즈버그는 1960년 컬럼비아 로스쿨 공동수석 졸업 후 연방대법관의 연구원직을 지원했지만 직을 맡지 못했다. 여성이라는 이유였다. 독일의 베를린필하모니가 여성 단원을 채용한 것은 창단된 지 100년이 된 1982년에 들어서였다. 지휘자 카라얀이 결단을 내려 그리 되었지만, 이 때문에 그는 단원들과 불화하게 되었고 30여년간의 평화로운 공존관계가 깨지는 일을 겪어야 했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내가 소속 법무법인에서 대표 노릇을 할 때, 사내의 외국인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 중엔 파트너 변호사 중 여성의 비율이 낮은 로펌에 사건을 주지 않는 곳이 있다. 한국도 변할 것이다. 여성 변호사의 파트너 승진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란다.”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우리 사회에 여성의 취업과 승진에서 구조적 차별이 엄존하는 것은 통계가 잘 말해준다. 여성은 과연 남성에 비해 능력이 떨어질까.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소속 법무법인에서 공개경쟁 채용시험을 시행해 보니, 여성 변호사가 남성 변호사보다 더 많이 합격하는 일이 잦았다.

불평등의 문제는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하는 것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1965년 하워드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쇠사슬에 발목이 묶여 있던 사람을 풀어주고 경주의 시작점에 세운 다음 ‘이제 자유니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라’라고 해서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회의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문을 걸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권리와 이론으로서의 평등이 아니라 사실과 결과로서의 평등이다.” 이런 인식에 기초해서, 단순한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이 바로 ‘적극적 조치’다. 그리고 차별의 태양을 실질적으로 파악하여 결과적 공정을 찾는 방책으로 등장한 것이 목표율 설정이나 할당제다. 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어떤 집단에서 소수자가 효과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려면 전체 구성원 중 적어도 15% 이상을 점해야 한다.(김현숙, ‘양성평등과 적극적 조치’) 물론 적극적 조치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반대 주장이 거셌다. 역차별, 수혜자의 성취 부진, 수혜자에 대한 낙인효과나 열등하다는 편견의 조장 등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고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것 따위가 그 근거였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효과를 감내하더라도 평등의 실현은 시급한 과제다. 또 능력주의는 자원이 많은 기득권 계층을 유리하게 하여 자칫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폐해를 낳는다.(박권일, <한국의 능력주의>)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우선 국가의 강력하고도 적극적인 개입이고, 다음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다. 1965년 존슨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300명의 기업경영자들은 여성의 고용을 위해서 ‘목표와 시간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양식을 보였다. 이게 선진국이다.

우리나라도 법령에 의해 공무원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 비례대표 후보 50% 여성 할당제 등 여러 제도가 채택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제도에 따라 그 수혜자가 남성일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고무적인 일은 법 개정으로 오는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임원 중 1명 이상의 여성을 두어야 하고, 또 2030년까지 국공립대에서 여성 교수의 구성비가 25% 이상이어야 하도록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공직이나 전문직 등의 경우이고, 그렇지 않은 직종이나 일반 기업에서는 사정이 좋지 않다. 입법으로든 행정으로든 기득권을 깨고 의식을 전환할 만한 계기를 부단히 만들어 가야 할 이유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여,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고 여성가족부의 폐지 공약을 내걸었던 대선 후보자가 곧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가 소속한 당의 대표는 최고위원 시절에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능력주의보다 나은 시스템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에 따른 정치적 이익이 상당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지 15년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딱한 현실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새 집권자들의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이래저래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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