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은 26일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을 둘러싼 여야 합의를 공식 파기하기로 했다.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지 나흘 만에 ‘잠정 합의→의총 추인→합의안 서명→파기 시사→파기 추인’이라는 이례적 과정을 거쳐 파기를 공식화했다. 합의 번복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당 사이 혼선이 노출되고 국회는 후폭풍에 휩싸였다. 차기 집권여당으로서 정치력 부재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의총을 열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재안 파기를 결정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의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수용하지 못하는 의장 중재안은 수용할 수 없고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대상에) 선거범죄와 공직자범죄가 포함되지 않는 한 합의처리할 수 없다는 게 우리 당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이 강행처리할 경우 필리버스터 등 국회법이 정한 모든 수단 절차를 사용하겠다는 게 오늘 의총 결과”라고 했다. 지난 22일 여야는 각각 의총을 거쳐 중재안에 최종 합의했다. 이후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자 지난 24일 권 원내대표가 합의를 번복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이날 의총에서 당 지도부는 합의 번복을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여야가 어떤 정치적 사안에 합의했더라도 국민의 의견보다 우선될 수 없다”면서 “여야가 합의해도 국민 뜻에 맞춰서 하는 게 정치권의 책무”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어 “검수완박법 처리 과정에서 판단 미스, 여론 악화의 부담을 당에 지우고 여러분들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뒤이어 발언대에 선 이준석 대표는 “민주당이 만든 논리적 근거 없는 협상 시한에서 강박 안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이 협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다소 협상의 틀을 깼다는 비판을 받을 지점이 있더라도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 상황에 당 전체가 일정 부분 책임을 공유한다면서 “일치단결한 목소리를 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와 당은 항상 일치단결해야 한다” “당선인께서 검찰 공무원 시절 했던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는) 말씀이 유지된다면 그 입장에 매우 공감한다”고도 했다.
비공개로 1시간여 진행된 의총에선 당 지도부의 합의 파기 의견에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재차 사과했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국민 편에서 명분있게 (재검토로) 가야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면서 “권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자고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일종의 재신임 형태가 됐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의총을 통해 윤 당선인의 뜻에 맞춰 단일대오를 갖추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전날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권 원내대표와 독대하면서 중재안의 원점 재검토 여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원점 재검토가 당선인 뜻은 맞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내부 혼란상 진화에 들어갔지만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번 합의는 소수 집권여당이 될 국민의힘의 향후 여야 협치 전략, 새 정부 당·정 관계 설정을 미리 그려볼 수 있는 가늠자로 평가돼왔다. 나흘 만에 공식 합의를 뒤엎으면서 거대야당이 될 민주당과의 협상 파트너십은 초반부터 금이 갔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국회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 와중에 국회 일정 전체가 냉각기에 들어갈 수 있다.
합의 파기에는 윤 당선인 의중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권 원내대표가 당 의총에서 추인받은 합의안이 번복되면서 향후 당·정 관계의 무게추가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냈다. 권 원내대표는 앞서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면서 “건강한 당정 관계로 당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