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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입력 2022.04.28 03:00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같은 힘으로 밀어도 쉽게 움직이는 물체와 잘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커다란 바위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지만, 크기가 작은 바위는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이보다 더 작은 돌멩이는 슬쩍 밀어도 쉬이 움직인다. 힘으로 밀 때 물체가 안 움직이려고 뻗대는 정도가 물리학의 질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질량도 크다. 작은 당구공이 커다란 볼링공보다 쉽게 움직이는 이유다. 질량이 큰 물체가 가만히 정지해 있으면 밀어도 잘 움직이지 않고,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도 어렵다. 멈춰 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다 멈추거나, 물체의 운동 상태가 변한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관성이라고 한다. 질량이 바로 관성의 척도다. 질량이 클수록 관성이 크고, 운동 상태의 변화에 더 강하게 저항한다. 질량이 커 처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나중에 멈추기도 어렵고, 쉽게 움직이는 것이 쉽게 멈춘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르면,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힘은 사과가 지구를 당기는 힘과 정확히 크기가 같다. 그런데 왜 지구는 꿈쩍 않고 사과가 떨어지는 것일까? 이것도 질량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구의 질량이 사과의 질량보다 훨씬 커서, 지구와 사과 사이에 작용하는 같은 크기의 중력에 의해서 지구의 운동 상태는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고, 질량이 작은 사과의 운동 상태가 크게 변한다. 둘 사이 힘이 같아도 질량이 작은 쪽이 더 크게 움직인다.

온도를 1도 올리기 위해 공급해야 하는 열에너지가 물리학의 열용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아 질량이 크면 열용량도 더 크다. 라면 하나 끓일 물은 금방 끓고, 곰국을 끓이려고 큰 통에 담은 물은 한참 기다려야 끓기 시작하는 이유다. 거꾸로 물이 식을 때도 마찬가지다. 질량이 큰 많은 양의 물은 열용량이 커서 식을 때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는 우리 선조의 석빙고의 원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겨울에 얼음을 크게 쌓아두면 열용량이 커서 전체의 온도가 천천히 변한다.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가능한 한 차단하고는 넓은 공간에 많은 얼음을 쌓아두면 여름까지 겨울 얼음이 녹지 않게 할 수 있다. 지난겨울 쌓은 얼음이 올여름 전에 녹았다면 내년에는 더 크게 얼음을 쌓으면 될 일이다. 우리말 속담 ‘쉽게 단 쇠가 쉽게 식는다’도 마찬가지 얘기다. 열용량이 작은 자그마한 쇳덩이가 더 쉽게 달고, 식는 것도 더 빠르다. 질량이 커 열용량도 큰 커다란 쇳덩이는 다는 것도, 식는 것도 느리다. 커다란 바다는 열용량도 엄청 크다. 바다는 낮에도 달지 않고, 밤에도 쉬이 식지 않는다. 해변의 일교차가 사막보다 무척 작은 이유다.

질량이 작다고 좋은 것도, 열용량이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여름까지 녹지 않게 하려면 석빙고 안 얼음을 크게 쌓아 열용량을 크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시원한 물을 빨리 마시려면 얼음을 잘게 쪼개 조각 하나하나의 열용량을 줄이는 것이 더 낫다. 물리학의 다른 용어와 마찬가지로 관성, 질량, 열용량도 가치중립적이다. 상황이 바뀌면 우리가 바라는 것도 달라진다.

‘쉽게 단 쇠가 쉽게 식는다’는 속담은 적은 노력으로 빨리 마친 결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쇳덩이의 열용량에 빗댄 얘기다.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관성과 질량에 빗대어 우리 삶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과거와 많이 달라진 지금, 오래전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고집은 바람직하지 않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그에 맞춰 다르게 휘는 가벼운 갈대같이,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바뀌어도 우리 모두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신념의 관성은 꼭 필요하다.

나는 소망한다. 오래전 다른 상황에서 습득한 생각을 달라진 현재에 맞춰 다시 바로잡는 마음은 깃털같이 가볍기를, 상황이 바뀌어도 지켜야 할 소중한 신념의 관성은 태산같이 무겁기를. 태산 같이 무거운 가치 있는 신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늦게 단 쇠가 늦게 식듯이, 천천히 치열하게 고민해 모두가 함께 쌓아올려 공유한 신념이 더 오래 굳건히 유지된다. 관심 갖지 않으면 쉽게 들리지 않는 사회의 여린 목소리에는 모두의 마음이 깃털같이 가볍게 호응하기를, 그렇게 모인 마음이 겹겹이 쌓여 이룬 소중한 신념은 태산같이 무겁기를. 어떤 황당한 혐오와 차별에도 우리 모두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 태산이 되고 얼마든지 품는 바다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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