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재밌는 건 없어”

고재열 여행감독

이외수 선생이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여행감독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방구석 여행자’였다. 강원도 화천군의 집필실에 고립되어 있지만 소셜미디어로 전국 곳곳의 ‘루저’들과 소통했다. 대선 주자부터 일반인까지 많은 이들이 감성마을 집필실을 찾아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 또한 지인들과 자주 그를 찾았다.

고재열 여행감독

고재열 여행감독

그의 부고를 듣고 맨 처음 떠올린 말은 “재밌을 땐 재밌는 거 해, 세상에 영원히 재밌는 건 없어”라는 말이었다. 인터넷 중독이 큰 이슈가 되었던 때인데 그의 해법은 간단했다. 그 또한 ‘인터넷 폐인’들이 모여있는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밤마다 들락거렸고 트위터에 몰입했다. 재밌을 때 재밌는 걸 해도 독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사례로 설명했다.

“내가 나무젓가락으로 땅바닥에 끼적끼적하고 있으면 옆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 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거의 낙서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결국 거기서 글자 폰트가 나오기도 한다. 그 덕에 산천어축제 때 그 글씨로 모든 상호를 다 도배하다시피 했다. 어떤 것에 몰두하면 높은 경지에 이른다. 건성으로 하면 어떤 걸 해도 쓸데가 없다.”

인터넷 저잣거리를 떠도는 일을 그는 작가의 의무라고도 했다. “시대를 읽지 못하면 의식이 진부해지고 작품의 신선도도 떨어진다. 진짜 위대한 것은 쓰레기통 속에 있다. 그런 곳에서 ‘막장’ ‘찌질이’라며 밑바닥 인생을 자처하는 이들과 만날 수 있다. ‘부채질닷컴’이니 ‘개소문닷컴’이니 하는 온갖 저급한 곳을 돌아다니며 엿보고 다닌다. 삼일 밤낮을 잠도 자지 않고 서핑하고 채팅한 적도 있다.”

사실 그가 ‘소통 대통령’이 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그의 삶은 자신을 세상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주류 사회로부터, 주류 문단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았다. 글을 쓸 때는 교도소 철문을 잠그듯 스스로를 유배시키고 썼다. 사람들을 피해 화천의 두메산골로 이주했는데 역설적으로 그는 그 어떤 작가들보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에서 그가 돋보였던 부분은 바로 맷집이었다. 많은 유명인들이 그처럼 소셜미디어를 시작했다가 악플 세례를 받고선 계정을 없애곤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누리꾼의 비난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 가끔 있기도 하다. 그러나 봉이 개천에 내려와 놀 때는 새우의 조롱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남의 말을 가려서 듣는 것과 함께 그가 행복의 비결로 꼽은 것은 ‘자뻑(자기 자신에게 도취된 것)’이었다. 우리는 자기 비하를 많이 했던 민족인데, 이제 좀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겠느냐며, 자뻑이라는 비타민을 마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뻑의 노하우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뻑은 착각보다 믿음에 근거해야 한다. ‘나는 언젠가 잘될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고 언젠가는 잘될 것’이라는 걸 스스로 되뇌면서 신념을 갖는 게 중요하다. 믿음은 신을 만든다. 아침마다 세수할 때 거울 보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도 중요하다.”

영원한 여행을 떠난 그가 어딘가에서 뭔가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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