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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살해한 양모 징역 35년 확정···아동학대 경각심 환기, 구조적 해결책 과제도 남아

입력 2022.04.28 15:03

수정 2022.04.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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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가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을 확정받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 아동이 정인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가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을 확정받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 아동이 정인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생후 16개월된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 장모씨가 28일 징역 35년을 확정받았다. 정인이를 방임하고 장씨의 학대를 묵인한 양부 안모씨는 징역5년이 확정됐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운 ‘정인이 사건’의 법적 심판은 이로써 마무리됐다.

정인이 사건은 한국의 아동학대 대응체계에도 큰 변화를 불러온 사건이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 개정안)’과 그에 따른 정부의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이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연 2회 이상 의심신고시 즉각분리,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의 권한 강화, 아동학대살해죄 신설 등 전체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정인이법 시행 1년이 넘어가는 지금, 현장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정부의 인식 전환을 두고는 긍정적인 평이 나오지만 즉각분리제의 실효성·적절성, 열악한 인프라 등은 문제로 꼽힌다. 국민적 공분에 놀란 정치권이 법을 급하게 쏟아내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충분히 논의·보장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크다.

■수사기관의 낮은 인식 드러나…경찰 ‘전담팀’ 신설

끔찍한 범행만큼이나 경찰의 안일한 대응도 공분을 불렀다. 정인이가 살아있을 때 이미 3차례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지만 경찰은 모두 내사종결 또는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사건을 다룬 서울 양천경찰서에서는 서장과 간부, 수사관 등이 징계를 받았다.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가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을 확정받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정인이를 추모하는 촛불에 불을 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16개월 여아 ‘정인이’를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가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을 확정받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정인이를 추모하는 촛불에 불을 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아동학대 범죄를 보는 수사·사법기관의 안일한 인식은 누차 지적돼왔다. 2020년 8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신고접수의 측면에서 경찰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보 오류, 미파악 등으로 인해 (아동 전문 기관으로의)사건정보 전달이 미흡했다”며 “고소고발에도 경찰, 검찰, 법원 등의 인식 차이로 인해 수사, 기소, 처분, 처벌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를 단순 가정폭력사건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잦았다고 입법조사처는 덧붙였다.

경찰은 지난해 2월부터 10세 미만 아동학대 사건이나 살해·치사 사건 등은 일선 경찰서가 아니라 시·도경찰청 전담팀으로 보내도록 했다.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현장조사를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는 등 조사권도 강화됐다. 하지만 물증이 남기 어려운 정서학대 등 사건에서는 여전히 아동 진술의 신뢰성을 낮게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책임 강화했지만 일선 인프라는 빠듯

정인이 사건 이후 정부는 ‘국가 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방자치단체에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을 확대 배치했다. 이들은 아동학대 신고 접수·조사 업무를 경찰과 함께 담당한다. 기존에 신고·조사 업무를 수행하던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대신 사례관리 등 사후 조치에 집중하게 됐다. 민간위탁기관인 아보전 대신 공공이 직접 개입함으로써 공적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는 정인이 사건 이전부터 결정된 것이었으나 정부는 사건 이후 이들을 더 증원하고 조사권을 강화했다.

2021년 1월14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정인이의 묘소에 시민들이 놓고 간 의사봉이 놓여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2021년 1월14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정인이의 묘소에 시민들이 놓고 간 의사봉이 놓여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조치 이후 업무 가중이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늘어난 업무를 감당할 만큼 인력이 충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7개 광역시·도 중 ‘연간 의심신고 50건당 아동학대전담공무원 1명’이라는 보건복지부 권고를 충족한 곳은 3곳(서울·부산·경남)에 그쳤다. 정부는 인력을 충원하고 있지만 아동학대신고도 매년 증가 추세여서 일선에서는 과로를 호소한다. 강현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목표만큼 충원한다 해도 그 목표치 자체를 1인당 50건 등 빠듯하게 잡으면 늘어나는 신고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아동학대는 조사 업무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데, 훈련시간이 적고 순환보직이라 전문성을 기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의 회복’을 담당하는 아보전도 과로에 허덕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재 전국에 73곳뿐이다. 지난해 상담원 1명당 약 76건의 사례를 맡았다. 전남의 한 아보전 팀장 A씨는 “광역시인데 아보전이 2개밖에 없는 지자체도 있다”면서 “가족기능 회복 프로세스가 강화되면서 일이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지역적 접근성과 인력 확충이 뒤따라야 아동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권한을 쪼개 놓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여럿 대리해 온 김예원 변호사는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의 협업이 아니라 책임전가로 왜곡될 수 있는데, 그를 막기 위한 대책이 없다”면서 “법 시행 초기에는 아동 진술을 참관하기 위해 경찰과 공무원이 해바라기센터 등에 다 오곤 했는데, 요즘은 아무도 안 오는 일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2021년 1월13일 ‘정인이 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정인이 양모를 태운 호송버스에 눈덩이를 던지고 차량을 손으로 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21년 1월13일 ‘정인이 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정인이 양모를 태운 호송버스에 눈덩이를 던지고 차량을 손으로 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무분별한 즉각분리는 독…“행정 편의적 조치” 지적도

‘정인이법’에서 가장 논란이 된 건 즉각분리제였다. 1년에 2회 이상 학대의심 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학대 판정과 관계없이 즉시 분리해 보호하는 것이다. 정인이가 3회 신고에도 양부모로부터 분리되지 못하고 결국 사망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즉각분리제가 시행된 지난해 3월30일부터 12월31일까지 1043건의 즉각분리가 이뤄졌고, 그 중 94.2%인 982건이 학대사건으로 확인됐다.

즉각분리제는 위기 아동을 신속하게 구출할 수 있지만, 아동학대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은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피해아동의 ‘분리 이후’가 세심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 해결의 대원칙인 ‘원가정의 회복’ 대책 없이 아동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단 시설로 분리하는 게 도리어 아동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적어도 아동의 욕구를 제도 안에서 어떻게 반영할지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해야 한다”며 “원치않는 시설 분리로 불안에 빠지거나 자해를 시도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분리된 아이들을 받아들일 인프라도 열악하다. 아보전 팀장 A씨는 “즉각분리된 아동이 가야 하는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전국에 100개도 안 된다. 아예 쉼터가 없는 지자체도 많다”며 “그 경우 쉼터가 위치한 타 지자체로 아동이 옮겨야 하는데 그러면 학교도 전학해야 한다. 가정은 물론 학교까지 옮기며 불안이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인이 양모 장모씨와 아동학대 방치 혐의로 함께 기소된 장씨의 남편 안모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2021년 5월14일 서울 남부지법 앞에서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등이 장씨에 대한 사형 선고를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인이 양모 장모씨와 아동학대 방치 혐의로 함께 기소된 장씨의 남편 안모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2021년 5월14일 서울 남부지법 앞에서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등이 장씨에 대한 사형 선고를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강현아 교수는 “즉각분리는 양날의 검이다. 안전을 최우선한다는 면도 있지만, 분리가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냐는 평가가 선행되기보다는 즉각성만 강조돼 우려된다”며 “특히 학대피해아동이 어리거나 학대행위가 심각할수록 분리 이후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한 이슈인데 인프라 문제는 깊게 논의되지 못했다”고 했다.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편의적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분리의 필요성이 있지만 (즉각분리제는)분리하는 과정에 통제가 없고 명시적인 기한 제한도 없다”며 “기존의 응급조치제도도 아동 분리에 효과가 있었고 법원·검찰의 검토 등 제도적 적절성까지 갖췄다. 이 제도를 실효성있게 가다듬지 않은 채 즉각분리제 도입은 옥상옥”이라고 했다.

■40여개 법안 쏟아낸 정치권…“단기적 대책 넘어 구조적 해결을”

정인이 사건이 이슈화된 2~3달 동안 국회는 40여개의 ‘정인이법’을 쏟아냈다. 국민적 공분을 의식해 쏟아낸 이 법안들 중 대다수가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월 서둘러 ‘1차 법안’을 통과시킨 뒤 2월에 빠진 내용을 다시 논의해 ‘2차 법안’을 통과시키는 촌극도 빚었다. 이후에도 계속 법 개정을 거쳤다. 즉각분리제의 한계나 열악한 인프라 등 문제도 이 속도전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권이 ‘단기적 대책’을 넘어 구조적·장기적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원 변호사는 “원가정 회복은 적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만 그게 정답”이라며 “영국은 ‘아동학대’라는 말 대신 ‘가정지원’이라고 쓰는 등 아동인권 선진국은 가정에 집중한다. 손쉬운 행정적 해결책만 찾아선 안 된다”고 했다.

강현아 교수는 “정인이 사건 이후 학대 신고와 조사 문제 등 아동학대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정책 관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산과 인력이다. 그런 부분이 없이 처벌이나 분리 등 눈에 보이는 식의 대응만 내놓은 점은 아쉽다”고 했다. 이어 “조사와 감시도 중요하지만 부모교육 등 보편적 사회서비스와의 연계도 함께 강화해 예방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1월10일 시민들이 정인이의 수목장이 있는 경기도 양평 공원 묘지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21년 1월10일 시민들이 정인이의 수목장이 있는 경기도 양평 공원 묘지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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