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초반, 나는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첫 경험을 하게 된다. 1980년대생들을 N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의 몇 가지 CF 문구가 떠오른다. “N세대는 물을 먹지 않는다”라는 음료 광고, “N세대의 소통법”이라는 통신사의 문자 요금제 광고 등이. 그 이전까지 ‘베이비붐세대’라든가 ‘386세대’ ‘X세대’라고 한 세대가 규정되는 것을 보며 나의 세대 앞에는 어떤 알파벳이 붙을까 괜히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N은 ‘네트워크’, 그러니까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W세대(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젊은 세대), M세대(2000년 이후 청년이 된 밀레니얼, 모바일에 익숙한 세대) 등으로 규정되다가, 이제는 MZ세대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얼마 전 <다정한 개인주의자>라는 세대론이 출간되었다. 1970년대생 X세대인 저자는 자신의 세대가 가진 성향을 ‘다정한 개인주의’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이 K컬처의 주역이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X세대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멋대로 살면 기분이 조크든요” 하고 인터뷰하던 그들이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힙’을 말하지만 그들만큼 거리에서 힙했던 세대는 아직 보지 못한 듯하다. 물론 보정된 추억이고 왜곡일 수도 있겠으나 실로 개인주의의 태동이었다고 할 만했다. 저자는 X세대가 기성세대와 MZ세대 사이의 조연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했으나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여전히 강렬하다.
몇 권의 책을 쓰는 동안 다음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들어왔다. 이런저런 주제들이 있으나 가장 쓰고 싶은 책이라고 하면, 1980년대생 세대론이다. 타인들이 N, W, M, MZ 하고 붙인 알파벳이 아니라, ‘다정한 개인주의자’와 같은 자기 규정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MZ세대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무려 20년의 시절을 묶어내는 데 대해서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말이 우선 나온다. 여전히 386이라고 명명되었던 그 세대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뿐 아니라 담론을 만들어내는 장에서도 그렇다. 그렇지 않고선 자신들 외의 다음 세대 청년들을 대충, 적당히, 그럭저럭 한 세대로 뭉그러뜨리는 무례한 발상을 하기 어렵다.
언젠가 1990년대생과 MZ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서로 다른 종의 인간이라는 데 합의를 보았고 그는 Z세대 안에서도 이건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자신의 주변만 보아도 다섯 살 차이로 좋아하는 가수가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고, 그래서 이러한 세대 구분은 의미가 없으며,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MZ세대라는 이 세대론의 용어는 ‘지금의 청년들이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 더해 자신들의 세대를 제대로 규정할 수도 없고 대표할 수도 없는 무력한 상황임을 상징할 뿐이다. 나의 세대인 M세대는 “우리를 20대와 함께 묶어주다니 고맙습니다” 하고 자조의 소재로 삼을 뿐이다. Z세대는 또 어떠한 마음일지 궁금하다.
나는 다음 세대를 함부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Z세대라고 하는 1990년대생들에 이르러서도 그러하다. 그들이 MZ라는 이 폭력의 합집합을 폐기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기를 응원하고 싶다. 나는 나와 다른 그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으나 적어도 그들 역시 기성세대에게 함부로 규정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겠다. 1975년생 김민희 작가가 자신의 세대를 규정한 것처럼 1983년생인 나도 스스로의 세대를 나의 언어로 규정하고프다. 몇 가지 떠오르는 단어와 표현들은 있으나 당사자로서도 몹시 섬세한 작업이 될 테니 그 언젠가를 기약해야겠다. 다정한 개인주의자라고 하는 X세대가 부디 실제로도 그렇게 다정한 세대로 기억되기를, 나의 세대 역시 그 다정함만은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