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8일 “신구 정부 교체기를 맞아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국민적 열망이 더 이상 외면당해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국회에 촉구했다. 송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법 제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충분히 확인됐고, 목숨 건 단식농성자들의 절규도 한 달이 되어간다”며 이같이 밝혔다. 인권위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실시한 ‘평등에 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응답자의 3분의 2인 67.2%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57%로 반대(29%)를 크게 앞질렀다. ‘사회적 합의’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인종, 용모, 혼인 여부, 임신·출산, 종교, 성별 정체성, 학력, 사회적 신분 등으로 특정한 개인·집단을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차별금지 원칙을 구체적인 법으로 만들어 시민 권리를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4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논의는 시늉뿐이었다. 지난해 6월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청원에 10만명 이상이 동의하며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국회는 심사기한을 2024년 5월까지로 미루기로 했다. 법사위는 지난달 차별금지법 공청회를 연다는 데 합의해놓고 정작 날짜는 보름 넘도록 잡지 못하고 있다.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과거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이 6차례나 좌절된 것은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 사유에 포함되는 데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반대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개신교 내부 여론도 바뀌고 있다. 최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설문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개신교인 비율은 42.4%로 반대(31.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더 이상 보수 개신교계를 입법 지연의 핑계로 삼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국회, 특히 다수당인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 당론으로 확정하고 입법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입법을 추진하던 수준의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혐오와 차별이 갈수록 확산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흔드는 상황에 인권보호와 사회통합의 안전장치로서도 차별금지법 도입은 시급하다. 모든 이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리는 인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 단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