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세상을 꿰뚫어보는 듯한 셜록 홈스의 오만함을 왓슨은 언젠가 깨뜨리고 싶다. 그가 이번에 제시한 문제는 오래된 회중시계다. 홈스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시계만으로 그 시계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예측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라 예측했지만, 왓슨의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홈스는 시계의 원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순식간에 줄줄 읊어댄다. 그것도 왓슨이 홈스가 분명 미리 그에 대한 뒷조사를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의심할 정도로 정확하게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홈스는 사전 정보는 전혀 없이, 오로지 시계에 남겨진 흔적들만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추론한 결과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 일화는 코넌 도일의 소설 <네 개의 서명>에 등장한 일화다. 셜록 홈스가 세계적 명탐정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관찰된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논리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결과를 추론하는 홈스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있다. 심리학자 마리아 코니코바는 그의 저서 <생각의 재구성>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듀오, 왓슨과 홈스를 대표자로 내세워 각각 왓슨식 사고방식과 홈스식 사고방식을 소개한다. 저자는 왓슨식 사고방식을 빠르고 직관적이며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뜨거운 반사적(reflexive) 시스템’으로, 홈스식 사고방식을 느리고 철저하며 논리적인 사고에 의해 추론하는 ‘차가운 사색적(reflective) 시스템’으로 구분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건의 해결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은 홈스의 방식이지만, 소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사고 방식은 왓슨의 그것이다. 이유는 직관에 따르는 왓슨의 사고방식은 익숙하고 편안하며 빠른 결과를 제공하는 가성비 높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변수 많을 땐 ‘사색적 사고’가 유효
흔히 매뉴얼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요인에 대해서는 이미 정해진 대응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방식은 많은 생명체에게서도 나타나는 효율적 생존 시스템이다. 건드리면 피하고, 따라오면 도망간다. 먹고 먹히는생태계 속에서 매뉴얼에 입각한 빠른 대응은 생존을 보장하는 데 유리하다. 자극을 빨리 인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할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왓슨식 뜨거운 반사적 사고가 존재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이런 즉각적 출력 시스템은 주변 환경이 안정적이고 변화가 거의 없는 경우에만 효과적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환경 변화가 심하고 다양한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에서는 단순 자극-무조건 반응 시스템의 가치는 오히려 떨어진다.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신속한 대응은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불이 난 곳에는 물을 붓는 것이 좋다. 물은 비열이 높고 기화점이 낮아 연소물의 온도를 신속하게 발화점 이하로 낮추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화재 시 물을 들이붓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름 화재나 전기 화재의 경우, 물을 붓는 것은 수증기 폭발을 유도하거나 감전 위험성을 증가시켜 오히려 피해를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화재에 따라 소화(消火)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과 그 각각의 요인들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에 대한 다양하고도 심도 깊은 추론이 필요하다. 홈스식 차가운 사색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다.
홈스식 사고방식은 다요인 분석과 각각의 요인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리적 결과에 따른 추론이 뒷받침되므로, 환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적절한 결과를 도출해 낼 효율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를 익히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에 홈스보다 왓슨이 훨씬 많은 이유는, 수많은 요인들을 각각 분석하고, 각 경우를 분리해서 추론하는 과정은 많은 인지적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깊이, 많이, 다층적으로 생각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답을 도출하는 것에 비해 어렵고 지난하며, 저절로 이루어지는 반사적 사고와는 달리 사색적 사고는 오랜 시간을 들여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학습되는 것이기에 더더욱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 하지만 소설 속 대부분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왓슨이 아니라 홈스다. 순간적인 직관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으나, 제대로 된 추론은 다음을 가늠할 수 있다.
신중함에 무게 둔 사람 중용됐으면
특히나 힘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일수록, 그들이 내린 판단의 결과는 더 많은 이들의 삶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더더욱 이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여러모로 자리바꿈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부디 직관적 사고의 명쾌함보다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효율성을 더 인정하는 이들이, 일방통행의 신속함보다는 다중경로의 신중함에 더 가치를 두는 이들이 그러한 자리에 이르기를, 혹은 이미 그런 위치에 이른 자들이라면 홈스식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중히 돌아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