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군사안보 중심의 한·미 동맹을 경제 분야·가치규범을 망라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대·강화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1일 만에 열린 회담에서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할 의사를 확인한 것이다. 역대 한국 정부가 유지하려 애써온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는 사실상 허물어졌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외교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양국 정상은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등 핵심·신흥기술 협력과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위해 공조하기로 했다. 첨단 핵심산업에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고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 정부 구상에 적극 협력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정상은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고, 양국 간 경제안보대화 출범을 공식화했다. 성명에 ‘중국’이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모든 내용이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냉전 구도가 공고해지는 국제환경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는 일은 물론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정교한 시뮬레이션 없이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에 매몰된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과거 사드 사태 때와 같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한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중국도 이해할 것”이라고 했지만, 중국 내 전문가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내세우기에 앞서 ‘중국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중관계가 어느 한쪽이 일방적 이익을 보는 관계가 아님을 설득하고, 이미 참여 중인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긴밀히 소통해야 할 것이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양국 정상은 한·미 연합훈련 확대 협의를 개시하고,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할 ‘확장억제’ 수단으로 ‘핵·재래식·미사일 방어’를 공동성명에 적시했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성명에 포함됐던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 선언’은 빠졌다. 북한을 상대로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고 했지만, 강경 대응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변해야 대화한다’는 식의 태도는 북한 상황 방치와 북핵 능력 고도화로 이어져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 한·미 양국은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 대북 관여정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기 바란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을 강조해온 만큼 회담 결과는 사실상 예견됐던 바다. 미국은 한국의 IPEF 참여와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 등 실익을 거둔 반면, 한국은 현안인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문제도 향후 ‘협의’키로 하는 등 구체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을 정부는 무겁게 새겨야 한다. ‘한·미 동맹의 진화’ 등 상징적 언사로 자찬만 할 때가 아니다. 결과를 냉정하고 엄중하게 평가하고, 중국 반발 등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