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로 한국과 일본 등 13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 역내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23일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IPEF 고위급 화상회의에서 “공급망 강화, 디지털 전환, 청정에너지·탈탄소 분야에서 경험을 나누고 협력하겠다”면서 “IPEF가 개방성, 포용성, 투명성의 원칙하에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IPEF에 참여한 나라들은 지난해 한국 수출의 41%, 수입의 39%를 차지한 초거대 경제권이다. 새 경제질서 규범을 만드는 데 창립 멤버로 참여한 만큼 걸맞은 활동으로 국익을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다룰 내용을 정하진 않았지만 IPEF는 기존 자유무역협정(FTA)과는 성격이 다르다. FTA는 국가 간 이동하는 상품에 붙는 관세를 경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 비해 IPEF는 범위가 훨씬 넓은 데다 상품 제조 과정까지 구속하는 규정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IPEF는 무역, 공급망, 탈탄소 및 인프라, 탈세 및 부패 방지 등을 4개 주제로 다룰 예정인데, 당면한 핵심 과제는 반도체 공급망 확충이다. 미국에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진다면, 역내 협력을 명분 삼아 한국에 제조공정의 변화 또는 공유를 요청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TSMC를 보유한 대만은 IPEF에서 제외됐다. 점유율 2위 삼성전자에는 IPEF가 TSMC를 추격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의 입김에 휘둘릴 수도 있는 것이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일본과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한국이 기계·전자 부품과 광물, 원자재 등을 안정적으로 들여올 기반이 될 수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새로운 경제협력체 참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IPEF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경제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안한 협력체이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24%, 수입 21%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벌써부터 중국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한국에 원자재와 중간재 수출을 통제해야 한다는 관영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한국 기업들의 중간재 중국 의존도는 30%에 육박한다.
윤 대통령은 “룰을 만드는 데 빠지면 국익에도 피해가 많다”고 강조했다. 기술 발전과 안보질서 변화에 따른 새로운 경제질서의 재편에서 소외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IPEF에는 긍정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인 경제와 기술의 흐름을 간파하면서도 미·중 사이에서 국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