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봄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풍물패의 자진모리 장단 소리가 교정에 울려퍼지자 한 학생이 웃으며 외쳤다. 24일 오후 1시10분, 2년 만에 대면 축제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정문 인근에서 풍물패 학생 30여명이 상모를 돌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손에 음료를 든 학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구경했다. 갓을 쓴 풍물패 단원 한 명은 한가운데서 막걸리를 들이켰다.
꽹과리 소리를 지나 교정에 들어서니 ‘뽀로로’ 뱃머리를 단 높이 6m짜리 이동식 바이킹이 나타났다. “시시해 보이는데…” 반신반의하던 남학생도 90도로 올라가는 바이킹을 한 번 타고 나더니 “미쳤다, 너무 재밌다”고 소리쳤다.
바이킹 주인 양규환씨(73)의 입가에도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매년 축제 시즌에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바이킹을 운영했지만 지난 2년은 코로나19로 축제가 열리지 않아 일을 못했다. “100원 쓸 것 50원만 쓰면서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지냈다”는 양씨는 “어제는 설레서 잠을 못 잤다. 학생들이 웃는 것을 보니 좋고, 일하는 사람은 역시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 했다.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풍물패 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바이킹을 타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 해제로 대학 축제가 돌아왔다. 지난 2년간 비대면 수업으로 대학 생활을 즐기지 못한 학생들도,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주변 상인들도, 주민들도 ‘일상 회복’을 즐겼다.
이날 축제 이틀째인 동작구의 중앙대학교 교정에도 축제 부스가 촘촘하게 들어섰다. 오전 10시30분, 이른 아침임에도 정문 앞에 깔린 벼룩시장에서는 학생과 동네 주민들이 상품을 들춰보며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소떡소떡 해방광장에 있어요!” 시장 틈으로 사회복지학부 학생 3명이 ‘소떡소떡(꼬치구이)’ 판매 피켓을 들고 부스를 홍보하며 지나갔다.

24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24일 한 학생이 아이스크림을 받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학생들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니 나타난 중앙 광장에 20여개의 푸른 천막이 보였다. 천막마다 동아리와 학과가 부스를 차리고 큰 목소리로 홍보를 했다. 사회복지학부의 ‘사복이네 소떡소떡’ 부스에서 학생들은 전기구이 그릴에 기름을 깔고 음식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10개를 팔아 나름대로 호황이다. 계산을 하던 2학년 서민수씨는 “작년엔 학교에서 활동을 못 했는데 이제 대외활동도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니 재밌다”며 “대면 축제를 기억하는 선배들에게 배워서 부스를 차렸다”고 했다.
“게임 한판 하고 가세요!” 경영학부 3학년 조은채씨도 게임 부스에서 목청을 높였다. 일정 금액을 내고 주최 측과 인디언포커 게임을 해 칩 10개를 따면 경품 응모권이 주어진다. 2020년 입학한 ‘코로나 학번’ 조씨에게는 올해가 첫 ‘캠퍼스 생활’이다. 조씨는 “지난 2년은 본가에서 수업을 들으며 학교도 안 와서 내가 대학을 다니는지도 까먹을 정도였다”며 “사람이 북적이는 것만으로도 대학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행복하다. 3년 만에 내가 대학생이라는 실감이 난다”고 했다.

24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 있는 벼룩시장에 학생들이 모여 있다. 한수빈 기자
2년 만에 축제를 열다 보니 우여곡절도 있다. 중앙대 정문에서 벼룩시장 매대를 연 한 상인은 “주차나 홍보, 일정 등과 관련해 학생회 측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다행히 학생들이 말을 잘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한양대에서는 주점 운영 시간을 두고 학생회와 학교 측 사이에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학교 측이 “자정 이후에 주점을 여는 것은 불가하다”고 통지한 것이다. 결국 학생회 측은 자정까지 운영한 뒤 각 단과대별로 안전귀가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2년 만에 돌아온 축제에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봉건우 경희대 학생회장은 “대면 행사 개최가 처음인 학생회 집행부원도 있어서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행사를 기획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전보다 2배 이상 일해도 괜찮았다”고 했다. 학생들의 기대는 축제 이름에서도 묻어난다. 25일부터 열리는 건국대 축제는 ‘일상회복맞이주간’, 경기 수원 경희대 국제캠퍼스 축제는 ‘경리해제’다.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24일 학생들이 봄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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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과 상인들도 학생들만큼 들떠 보였다. 거리 두기가 유지되는 동안 대학가 상권도 침체를 피할 수 없었다. 지인과 중앙대 벼룩시장을 구경한 주민 A씨(60)는 “그동안은 죽은 동네 같았는데, 2년 만에 축제를 하니 활기차고 좋다. 대학생들도 꿈을 이뤘으니 얼마나 좋겠나”라고 했다. 축제를 앞둔 성동구 한양대학교 앞 먹자골목 ‘이모네생고기’ 사장 김준석씨(48)는 “일상회복 이후 2년만에 동아리 손님들이 다시 오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수영동아리와 태권도 동아리가 회식을 하고 갔다”며 “이번 축제 때는 주점을 운영하는 학과에 오돌뼈 같은 볶음류 안주를 제공했다. 앞으로도 단체와 동아리 활동이 많아질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높아진 인권·환경 의식도 엿보였다. 중앙대는 축제 기간인 24일부터 26일까지 오후 9시마다 ‘플로깅(쓰레기를 주우며 하는 조깅)’ 행사를 진행한다. 경희대와 고려대는 축제 공연 관람석에 장애학생을 위한 ‘배리어프리 존’을 운영한다. 봉건우 경희대 학생회장은 “축제엔 인파가 몰리고 부대낌도 많아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즐기기 어렵다는 생각에 배리어프리존을 기획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