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청년 노동자가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지 오늘(28일)로 6년이 됐다. 저임금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홀로 작업하다 사망한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안전 요구가 높아지고, 산업재해 방지에 노력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시행으로 이어졌다. 노동자 10만명당 3.35명으로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인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규제완화를 잇따라 시사해 노동안전 후퇴가 우려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대재해법이 일종의 규제가 아니냐는 (산업계의) 지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기업인 경영의지를 위축시킨다’며 중대재해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인 만큼, 윤석열 정부가 법 개정 대신 시행령을 손질하는 방식으로 법을 형해화시킬 가능성을 노동계에선 경계하고 있다.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제도 퇴행 기로에 섰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26일 게임·소프트웨어 기업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주 52시간제가 직무·업종 특성이 고려되지 못한 채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도입돼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유연화 방침을 시사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정착돼가는 주 52시간제를 흔드는 것은 기업 이윤을 늘려주기 위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잡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크런치 모드’(마감을 맞추기 위한 초고강도 노동)로 악명 높았던 게임업계 노동자들은 벌써부터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삼성·현대차를 시작으로 주요 대기업들이 총 1000조원 투자 및 26만명 신규 고용 계획을 발표한 이후 본격화됐다. 재계가 푸는 돈보따리에 규제완화로 화답하겠다는 기류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불리한 환경에서 성장을 촉진하려고 정부가 소매 걷고 나서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해선 안 된다. 산재로 인한 한국의 경제적 손실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5.91%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한 총리는 “(기업이 요구하는) 국제적 기준을 맞추는 것이 전체적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기업에만 적용되어선 곤란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기본권 역시 국제적 기준에 맞춰 보장할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