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업활동·경제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부처가 ‘규제개혁 부처’라는 인식을 갖도록 했고, 어렵고 복잡한 규제 철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령과 부령으로 할 수 있는 규제들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향해 규제 완화 속도와 강도를 높이라고 한 것이다.
규제 완화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우선순위로 일찌감치 예고됐다. 인수위가 발표한 6대 국정목표와 110대 국정과제에 ‘민간 주도’를 명시했고,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와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을 동시에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 물꼬를 윤 대통령이 기업·경제 분야부터 풀겠다고 한 것이다. 흔히 기업·경제 규제는 인허가·독점이나 노동·환경·안전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서는 대기업집단 총수의 친족 범위 축소, 인수·합병 신청 시 독과점 해소방안 자율적 마련, 플랫폼기업 거래질서 자율 규제, 노사의 근로시간(주 52시간제) 자율선택 확대 등이 제시됐다. 공정거래위 감독이나 소상공인 배려, 노조와의 임·단협 등으로부터 기업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해묵은 규제는 풀어야 한다. 그러나 규제 완화가 친기업 일변도로 흐르면 특혜 시비가 일고 노사정 간 긴장을 높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령·부령과 행정지도로 규제 완화를 독려한 것도 우려스럽다. 당장 정부는 31일 국무회의에서 한동훈 법무장관 직속으로 신설하려는 ‘인사검증관리단’부터 위법 논란에 휩싸여 있다. 행정기관 권한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한 정부조직법(6조)을 근거로 대통령령·부령을 고쳐 인사혁신처장의 인사검증 권한을 법무부로 넘기려 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조직과 권한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원칙이 무너지면 장관 탄핵 사유도 된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도 개정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집회를 허용한 법원의 잇단 가처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용산 대통령실 100m 이내 집회 금지’ 지침도 고수하고 있다. 법 위에 ‘시행령 통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법률은 국회가 만든다.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법을 구체화하지만, 법 조항 취지와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여소야대 국회를 우회해 대통령령·부령에서부터 규제를 풀라는 윤 대통령 지시도 예외일 수 없다.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면 협치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행정 편의와 속도만 높이려다 행정독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