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견제·균형 외면하고 졸속 출범하는 ‘법무부 인사검증기구’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 내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안이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한덕수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및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입법예고부터 국무회의 의결까지 딱 1주일 걸렸다. 이르면 오는 7일쯤 관보 게재와 함께 인사정보관리단이 공식 출범한다. 통상 40일 걸리는 입법예고 기간을 이틀로 줄일 만큼 서두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졸속 결정은 졸속 운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정보는 힘이다. 공직사회에서 고급 정보가 모이는 곳에는 권력도 집중된다. 공직후보자들의 내밀한 신상정보가 과거 국가정보원의 ‘존안자료’와 유사한 형태로 축적될 경우 오·남용이 우려된다.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법무부가 수사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 검증까지 법무부가 맡게 될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 검찰은 형사재판에서 법관의 판단을 받는 이해당사자인데,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재판장을 선택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법무부는 장관이 중간보고를 받지 않기로 했으며, 정보가 사정 업무에 이용되지 않게 ‘차이니스 월(부서 간 정보교류 차단막)’을 치겠다고 말한다. 그럴 거라면 굳이 위법 논란을 감수하며 법무부에 인사검증 조직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 인사혁신처에 두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법무부는 “미국에서 이렇게 한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미국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자는 4000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 중 1200명 정도는 상원 인준 대상이다. 의회가 대통령의 공직 임명권을 견제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국회 임명동의가 필요한 공직이 23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법무부 장관(연방검찰총장 겸임)은 대통령의 최측근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보수·진보 모두에서 신망이 높은 법관 출신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초대 법무장관으로 갈런드를 지명하며 “나를 위해 충성하지 말라”고 했다. 차남 헌터 바이든에 대한 연방검찰 수사를 의식한 발언이다. 바이든은 개인적 인연이 없는 갈런드를 지명함으로써 차남 수사의 공정성을 보장할 것임을 공개 천명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을 두고 “내밀한 비밀 업무가 감시받는 통상 업무로 전환되는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했다.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 인사정보관리단장이 국회에 출석한다 한들,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인사검증 과정을 세세히 공개할 수는 없다. 온 나라가 ‘시스템도 문제지만 한동훈이 더 문제’라고 하는데, 당사자만 외면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는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한다. 권력의 집중은 독단과 독선을 야기하고, 그 위험은 권력을 쥔 이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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