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유형별로 시세의 60~70%대에 머물고 있는 주택공시가격을 단계적으로 시세의 90% 수준까지 정상화하려던 계획이 결국 무산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기존 정상화 계획을 폐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정상화 계획이 폐기되면 고가 아파트 등 부동산 자산이 많은 일부 계층은 연간 수천 만원의 보유세 절감 혜택을 보게 된다.
1일 국토교통부는 2020년 11월 확정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재검토하고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1년 기한의 연구용역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확정했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주택 유형별로 2030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90%까지 끌어올린다는게 골자다. 일부 단독주택의 경우 현실화율이 50%대에 머무르는 등 현행 공시가격 제도는 자산의 실제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소수의 부동산 부유층이 큰 이익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계획안 재검토를 내걸어 당선됐다. 이번 연구용역은 공약 이행 차원에서 진행된다. 국토부는 “최근 2년간 높은 공시가격 상승으로 인해 조세·복지제도 등에 큰 영향을 주는 등 비판을 받았다”며 “적정가격의 개념과 해외사례 등을 고려해 현행 목표 현실화율의 적절성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현실화 계획 발표 당시만해도 “공정과 신뢰 회복” “복지제도에 영향 적다” 등을 주장했던 정부가 불과 1년여 만에 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공시가격과 이를 기반으로 한 보유세 부과 등 부동산 세제 정책의 경우 이미 정부가 원칙을 여러차례 훼손한 상태다. 올해만해도 집주인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보유세 부과 등에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기로 했고,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떠 ‘공정시장가액비율’까지 내렸다.
이를 통해 통상 수 만~수십 만원선의 세금절감효과를 보는 대부분의 1주택자들에 비해 고가의 부동산 부유층은 연간 수천 만원의 세금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집걱정없는세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가격 상승의 이익을 얻으면 그만큼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책임”이라며 “집소유자에게 가격 폭등의 이익은 선사하고 세금은 깎아주는 특혜는 민생에 완전히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경제여건 등을 감안해 수시로 공시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아예 명문화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경제위기나 부동산 가격급등 등 외부 충격이 있을 경우 계획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등의 탄력적 조정장치 신설(세부요건 및 절차 포함) 여부도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되면 선거 등을 앞두고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공시가격 인하에 나서더라도 견제할 수 없게된다.
공시가격은 각종 복지제도에서 수급대상자의 재산기준으로도 활용되는데, 이 역시 공시가격 외 다른 기준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국토부는 “보다 근본적으로 공적목적을 위해 정부가 별도로 산정 중인 공시가격의 성격과 함께 공시가격을 활용하는 행정제도 등에 대한 다른 가격기준 적용 가능성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연구용역과 병행해 전문가 자문 위원회를 구성해 월 1회 운영할 계획”이라며 “재검토를 통해 계획안을 11월 중 수정·보완한 뒤 2023년부터 적용하고, 공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방안도 내년 중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