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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야구를 안 해봐서

입력 2022.06.02 03:00

수정 2022.06.0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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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박찬호가 물었다.

“그런데, 이 기자는 야구가 뭐가 그렇게 좋아요?”

수없이 들었던 질문. 그때마다 반복했던 대답.

“야구는 매일 하는 종목이잖아요. 오늘 졌어도, 내일 또 경기가 있는. 그래서 지는 법을 배워요. 그게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야구가 그걸 알려줄 수 있어요.”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우리 사회는 패자에게 잔인하다. 대한민국 승패의 윤리학. “승자는 다 가지고 누릴 것. 패자는 닥칠 것.” 11-0으로 이기든, 연장 접전 끝 5-4로 이기든 점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슈퍼 울트라 승자 독식 사회다. 승부와 시험이 다르지 않다. 커트라인을 넘었다면 뭐든 해도 되는 ‘위너’가 되고, 1점차로 못 미쳤다면 ‘루저’다. 시험은 능력 평가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은 신분을 가르는 장치다. 출발선이 어디인지 고려되지 않는다.

적도와 남극을 오가는 승패의 온도차는 온 세상을 승리 지상주의로 내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이겨야 한다. 법무장관들의 딸을 향한 마음과 계산이 딱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전의 타자들은 스테로이드를 맞았다. 올림픽에선 금지였지만, 야구에는 규정이 없었다. 그러니까 했고, 남들도 다 한다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뒤집어썼다.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가혹하다, 대한민국 승패의 윤리학

가혹한 승패의 윤리학은 거꾸로 패자에게 심리적 도망을 강요한다. 패배의 원인을 자기 진영의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는 방법으로 ‘패자 내 승자’의 위치를 가지려 하거나 “사실은 지지 않았다”는 거짓으로 도망친다. 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경기를 준비할 줄 모른다. 상대방이 실수하거나 잘못해서 스스로 넘어지길 기다리는 수준이다.

추신수에게 물었다. KBO리그에서 뛴 지난해 초반 한동안 부진하다 성적을 막 끌어올렸을 때였다.

“새 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야간 훈련을 얼마나 많이 했나요?”

추신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6시즌 뛰는 동안 경기 끝나고 남아서 훈련한 적 한 번도 없는데요.”

추신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것은 잘 안 됐다는 것이고 기분이 안 좋다는 얘기다. 그럴 때 훈련하면 마음과 몸을 모두 고통스럽게 만든다.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그 마음을 푸는 게 우선이다. 이야기 상대를 찾아서 풀어야 한다. 아니면 싹 잊고 잠들어 지워 버리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패배에 대한 반성이 화풀이로 이어지면 되레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추신수에게 ‘노력’은 내일의 플레이에 대한 준비다. 추신수는 “만약 고치고 바꿔야 할 게 있다면 다음날 일찍 나와서 준비하는 게 몸과 마음 모두에 낫다”고 덧붙였다.

팬들 역시 승리의 기쁨만 좇지 않는다. 매일매일 하는 야구는 한 시즌을 다 치렀을 때 1등의 승률이 60% 안팎, 꼴찌도 40% 정도다. 팬들도 패배가 익숙하다. 그래도 ‘팬질’을, 일방적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건, 패배한 오늘의 경기에서 희망을 찾고, 그래서 내일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응원의 양분으로 삼기 때문이다.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그래도 가능성을 보인 신인급 유망주 투수, 타자의 장면들을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조금은 웅장해진다.

석 달 사이 두 번의 커다란 선거가 끝났다. 승자는 이겼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이고, 패자는 여기저기 화풀이하듯 일을 처리한 뒤 삿대질을 하며 정신 승리를 추구하는 중이다. 이기는 법도, 지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모르는 건 다 야구를 안 해봐서다. ‘미스터 컵스’ 어니 뱅크스는 “전 국민이 모두 야구를 2시즌씩만 경험한다면 미국은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승패의 윤리학은 여전히 중력처럼 온 사회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한 초속 11.2㎞의 힘은 어쩌면, 바로 야구에 있다.

야구에 있다, 그것을 벗어날 힘

“그래서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박찬호가 씨익 웃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아시아 투수 최다승 124승 뒤에는 98패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TMT(투머치토커). “내가 왜 투머치토커가 됐냐 하면, 1994년 엘레이에 처음 갔을 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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