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추앙, 환대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한동안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지난주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지리멸렬한 삶을 어떻게 버티고 살 것인가에 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특한 점은 이 과정이 해방, 추앙, 환대라는 대중문화 상품에는 다소 낯설고 무거운 단어를 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해방’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라면, ‘추앙’과 ‘환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먼저 드라마는 “추앙하다보면 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추앙은 주요 인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적 관계와 대조된다.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주요 인물들의 선함과 예의바름은 오히려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다. 이들이 베푸는 친절함(타인을 위한 행동)은 ‘등신’이 되는 지름길로 작동하여 “사람이 너무 싫은” 감각으로 돌아온다. 추앙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정서적 연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조언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하며 응원하는” 행위로 구현된다. 드라마에서는 멜로 라인을 중심으로 사용되지만, 추앙은 오랜 친구, 직장 동료, 가족, 연인 관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더 나아가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는 해방을 위한 방법을 친밀한 사람들 간의 추앙을 넘어, 적대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환대’로 확장한다. 이는 “너는 끝까지 나에게 예의 없었으면서 나는 왜 끝까지 예의 지켜야 하는데”라는 질문으로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이에 대한 대답 또한 명확하게 제시된다.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공격하는 것은 “내 몸에 썩은 물이 도는 느낌”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삶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초라하고 비참해진다. 결국 나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것은 이들을 향한 부정적 감정으로 쌓아 올린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행위이다. 이 점에서 <나의 해방일지>는 우리에게 일상에서 어떻게 친절함을 지키며 살 것인가 묻는다.

친절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감각인 듯하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로 안다”와 같은 말은 친절함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도리어 해가 되어 뒤통수를 칠 거라고 경고한다. 정말 그럴까? 고무적이게도 작년 8월 BBC Radio 4와 서섹스 대학이 합동으로 실시한 친절함 테스트(Kindness Test)는 이와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144개 국가에서 6만명 이상(18~99세)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생애 동안 친절함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줄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중 3분의 2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람들을 더욱 친절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참가자의 60% 이상이 24시간 이내에 친절함을 경험했다. 집, 의료기관, 직장, 상점이 친절한 행위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은 장소였고, 친절함을 가장 보기 힘든 곳은 인터넷, 대중교통, 거리였다. 이는 인터넷과 같은 익명의 장소보다 공동체가 친절함을 주고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절함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친절함이 잘못 해석될 것에 대한 두려움’(65.9%), ‘시간 부족’(57.5%), ‘소셜미디어 사용’(52.3%), ‘기회 없음’(42.1%), ‘친절함이 약함으로 보이는 것’(27.6%) 등이다. 이러한 친절함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실제 일상에서 친절함을 흔하게 경험하고 있고, 친절함을 더 많이 행하고 볼수록 높은 수준의 웰빙을 보고했다.

BBC의 친절함 테스트 결과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제시하는 해답과 공명한다. “5초, 7초의 설렘을 모아서 하루 5분 정도의 숨통이 트이는 순간을 만드는 것.”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 모두의 작은 친절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일상의 혁명은 이러한 작은 순간들 속에 존재한다.

※친절함 테스트, ※테스트 결과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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