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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강요하는 사회

지난 어린이날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오랜만에 가족들과 밖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개인적으로 인근에 볼일이 있어 홀로 횡단보도 쪽을 향하던 중 어느 비영리기구의 직원과 맞닥뜨렸다. 30대로 보이는 그 남성 직원은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어린이날 거리에 나왔다며 “한 달 2만원, 하루 700원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며 당장 정기후원 신청서를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가계운영에 부담되는 금액도 아니고, 기부가 남을 돕는 일을 넘어 개인의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반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다른 볼일이 급했던 터라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보고 추후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직원은 막무가내였다. “나중에 하겠다는 분들치고 하시는 분들 없다. 오늘 한 건도 못했으니 가입하고 가시라”고 말했다. 무슨 신용카드 발급처럼 기부 참여를 길거리에서 강요받나 싶어 마음이 상했다. “알아서 하겠다”고 하자 남성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럼 그러시라”며 휙 돌아섰다.

자식을 낳고 어미가 돼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남에게 많이 베풀고 살아라”였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원봉사는 엄두를 못 냈지만 아이들 학교와 지인 권유 등을 통해 정기후원을 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딱한 사연을 접하면 비정기 후원도 가끔씩 하던 차에 마주한 그때의 상황은 지금도 상당히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다.

국내 기부 참여율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 참여율은 2009년 32.3%, 2011년 36.4%로 증가했다가 이후 감소세를 보이면서 2019년 25.6%에 그쳤다. 그런데 시기가 묘하다. 기부 참여율이 고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서는 전환기인 2011년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공금 유용 비리가 터진 다음 해이다.

이를 보면 기부율이 낮아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부금 운영 단체에 대한 신뢰도와 연관이 있지 않나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사실 국내 비영리단체에 대한 투명성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져나왔다. 근래에는 2020년 정의기억연대의 피해자 할머니 후원금 논란이 있었다.

다행인 점은 기부금액은 해마다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부조사 리포트인 ‘기빙코리아 2020’은 이를 정기기부율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기부만 한 경우보다 기부와 자원봉사를 모두 한 사람의 기부금액이 최대 2배 이상 더 높았다고 했는데 이는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재능기부 등을 통해 봉사를 오래 한 사람들을 만나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남을 돕기 시작한 후 삶이 행복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남에게 도움이 되고 기부자들도 행복해지는 기부 방법에 대해 기빙코리아 2020은 이 같은 해답을 내놓았다. “모금만 독려할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나눔 교육을 통해 (구성원들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화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되면 길거리에서 기부를 시민들에게 강요하지 않더라도 기부 참여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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