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이 새로운 수행기사(송강호)를 지칭하면서 한 대사이다. 점잖아 보이는 박 사장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기사를 다른 계층의 사람으로 여긴다. 간혹 대리운전기사 중에 룸미러를 위로 올리고 운행하는 경우가 있다. “임원이 눈 마주치는 걸 싫어해 아예 룸미러를 떼냈다”는 전직 대기업 수행기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이해했다. 철저하게 을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수행기사의 단면이다.
수행기사는 갑질 피해가 심한 대표적인 직종이다. 운전이라는 업무 영역을 벗어나 하인처럼 부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해욱 대림산업(현 DL이앤씨) 부회장, 이명희 전 대한항공 회장 부인, 이장한 종근당 회장 등은 수행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다. ‘살아 있는 CCTV’로 불리는 수행기사의 폭로는 하루아침에 수행하던 ‘대장’을 뒷자리에서 끌어내리기도 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던 이완구 전 총리는 수행기사가 두 사람 만난 날짜를 기억해 증언하자 자진사퇴했다. 보고 듣는 일이 많은 수행기사는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에 가장 먼저 불려간다.
그렇다고 운전기사가 갑을관계에만 놓이는 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부터 21년간 한 명의 수행기사만 뒀다. 대통령 차량은 경호요원이 운전해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은 경호훈련을 받도록 해 수행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그는 퇴임 후 봉하마을로 함께 내려갔고,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도 몰았다.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40년간 동고동락한 수행기사에게 이사급 대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동아제약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내부에서 ‘수행기사 임원’을 놓고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최대주주인 강정석 전 회장의 수행기사가 2019년 상무보로 승진해 근무 중인데 직원들 사이에서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승진시킨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측은 “수행기사들은 정규직이며, 공정한 평가와 승진 기회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이 수행기사 임원이 어느 경우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