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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기 위해선 먼저 만나야 한다

입력 2022.06.09 03:00

수정 2022.06.0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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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공존하기 위해선 먼저 만나야 한다

지금에 와서 뭘 시작하긴 너무 늦은 듯하고, 그렇다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긴 아까운 주말 밤에는 역시 재미있는 드라마가 제격이다. 부담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으니. 그런데 가볍게 시작한 장면이 자못 심각하게 흘러간다. 사랑하는 여자의 언니, 어쩌면 처형이 될지도 모를 그녀를 처음 만난 남자 주인공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더니, 피하듯 급하게 자리를 뜨고 만다. 언니는 동생에게 말한다. 저 사람은 내가 다운증후군이라 날 싫어하는 거라고,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음 날, 자매를 다시 찾아온 남자는 진정을 담아 고백한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이를 처음 보았기에 당황했을 뿐,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러니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알려달라고 말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문득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 휠체어 사용자를 만나 수다를 떨고, 그의 차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도착하면 휠체어를 차에 넣어 줘야지, 다년간 유모차를 접어 본 경험자로서, 무거운 쌍둥이 유모차도 번쩍 들어 SUV 트렁크에 실었던 근력의 소유자로 그 정도쯤은 너끈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는 지금껏 오랫동안 혼자서 운전해온 자가운전자였다. 운전석 문을 연 그는 휠체어와 자동차 좌석 사이에 플라스틱판을 끼우고 자리를 옮긴 뒤, 휠체어를 접어 뒷좌석에 넣는 과정을 마치 기지개라도 켜듯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일은 그저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휠체어 사용자가 차에 타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운전석으로 이동하거나 휠체어를 싣는 것이 아니라, 소지품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었다. 떨어진 곳이 차량 안이라면 괜찮지만, 차량 밖이라면 대략 난감해진다. 비장애인이라면 그저 몸을 살짝 굽히고 손을 뻗는 것만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허리를 굽힐 수 없는 그에게 있어 차량 외부에 떨어진 물건이란, 뻔히 눈앞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결코 잡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우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시각과 자신의 경험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는 종종 타인의 시각과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는 자책과 한탄으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 거울신경(mirror neuron)이 가장 발달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거울신경이란 한 개체가 다른 개체의 특정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동하는 신경세포로, 보는 것만으로도 관찰자 자신이 실제로 행하는 것처럼 대뇌피질의 세포들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거울신경이 발달해 있기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타인이 먹는 모습과 성관계를 맺는 모습을 나의 ‘쾌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산해진미가 산더미처럼 있어도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면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타인의 성관계는 유전자의 존속이라는 나의 생물학적 숙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방과 포르노그래피가 인터넷 콘텐츠의 양대 산맥으로 굳건한 이유는, 인간의 뇌에 발달한 거울신경이 타인의 경험을 쉽게 나의 것으로 대치시켜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울신경이 발달했다는 것은, 조금만 노력한다면 타인의 입장과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주인공과 현실의 나는 그 순간, 왜 그렇게 당황했을까.

그 바탕에는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의 삶에서 이들을 만나고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현실이 있다. 그들이 적어서가 아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휠체어 사용자로 등록된 이는 약 26만명이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다른 이유로 인해 원활한 보행이 불가능한 이들까지 더한다면, 휠체어 사용자의 숫자는 몇 배나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내 가족에 이들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비장애인들이 주류인 세상의 시스템이 그들을 조용하게 배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존이며,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울신경의 중요성이 점점 더 증대되는 셈이다. 타고난 거울신경을 활성화시킴에 있어 필요한 건 단 하나,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접하는 것이다. 자주 보고 익숙해지면, 나머지는 타고난 거울신경에게 맡기면 된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조용한 배제가 생각보다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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