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ILO의 ‘안전·건강한 노동환경’ 기본권 채택과 정부의 역할

지난 1월10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및 한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1월10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및 한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가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으로 지난 10일 채택했다. 노동기본권은 ILO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 보장을 위해 선언한 기준으로, 이번 조치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산업재해 피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의미있는 진전이다.

ILO는 1998년 ‘노동 기본원칙과 권리선언’을 발표하면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 4개 분야를 노동기본권으로 정하고 관련 협약 8개를 기본협약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24년 만에 산업안전보건을 노동기본권으로 추가했다. 회원국은 산업안전보건 관련 ILO 협약 155호(산업안전보건 및 노동환경)와 187호(산업안전보건 추진체계)가 기본협약으로 채택된 만큼 이를 준수해야 한다. ILO가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5번째 노동기본권으로 채택한 것은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뜻이다. ILO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 노동자 약 300만명이 산재나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안전과 건강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부각했다.

이번 ILO 결정은 특히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월 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산재 사망사고는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정도의 노력으로는 산재를 막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되었음에도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개정을 요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적극 수용할 뜻을 밝혔다. 안전은 노동시간과도 직결된 문제인데도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탄력적 운용 등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며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모두 ILO 산업안전보건 관련 노동기본권에 저촉될 수 있는 사안이자, 산재예방 강화를 고용노동 분야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꼽은 정부 방침과도 배치된다.

정부는 이번 ILO 결정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ILO의 이번 결정으로 당장 정부가 부담할 것은 없지만 결코 가볍게 볼 일도 아니다. 최우선 과제는 앞으로 강화될 ILO의 산업안전 관리 이행 보고 의무에 대비하는 일이다. 정부는 2008년에 산업안전보건 관련 두 협약을 비준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점검할 기회가 없었다. 당연히 중대재해법 개악과 같은 법·제도의 후퇴는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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