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두 포대’.
대한민국 동네빵집의 대표주자인 대전 성심당의 ‘출발점’이자 ‘정신’이다. 성심당 설립자 임길순씨(1997년 작고)와 그 가족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 부두에서 피란민 1만4500여 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임씨 가족은 거제와 진해 등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오다가 1956년 늦여름 열차에 오른다. 목적지는 서울.
“덜커덩, 끼익.”
약 5시간 동안 달려오던 열차가 대전역에서 갑자기 고장으로 멈췄다. 한 번 멈춘 열차는 기약 없이 서 있기만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임씨 가족은 열차에서 내려 대전역 인근에 있는 대흥동 성당을 찾아갔다. 당시 성당을 지키던 신부는 임씨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밀가루 2포대를 내줬다. 임씨는 이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 천막집에서 팔기 시작했다.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지난 4일 오후 5시쯤 대전 중구 은행동 성심당 문화원. 지난달 1일 문을 연 문화원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동네빵집이 문화원을 열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 서울·부산 등 전국은 물론 일본 등 외국에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화원 4층 갤러리의 한 구석에 밀가루 두 포대가 놓여있었다. ‘미국 국민이 기증한 밀로 제분된 밀가루’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물론 이 밀가루 포대는 성심당 측이 나중에 구해 전시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밀가루 두 포대에 얽힌 설명문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밀가루 두 포대에는 성심당이 추구하는 ‘나눔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주위를 이롭게 하는 것’, 우리 성심당은 늘 이 정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임영진 대표·68)
성당 신부의 나눔으로부터 시작된 성심당의 ‘나눔 경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립자 임씨는 하루에 만든 빵의 3분의 1 정도를 이웃에 나눠줄 정도로 나눔에 열정을 보였다. 그의 아들인 임영진 현 대표 역시 매월 3000만원 어치가 넘는 빵을 사회복지시설 등에 나눠준다.
성심당 문화원은 ‘나눔’과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성심당의 정신’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공간이다. 2층에 마련된 메아리 상점에 가면 성심당의 대표 상품인 ‘튀김소보루’와 똑같이 생긴 비누가 있다. 선물용 등으로 인기가 높다.
“튀김소보루를 튀기고 난 콩기름을 정제해 만든 ‘튀소(튀김소보루의 줄임말) 비누’예요. 여기서는 버려지는 폐현수막과 밀가루 포대를 재활용해 만든 파우치와 가방 등도 만날 수 있어요.”
성심당 문화원 설립을 기획하고 전시 실무를 이끈 김미진 이사의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재이용·재사용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1층의 메아리 상점에서는 ‘성심당과 함께 하는 즐거운 빵 생활’을 주제로 한 유기농·친환경·비건 상품과 성심당 기념품 등을 살 수 있다. 커피와 몇 가지 빵도 즐길 수 있다.
3층 메아리 라운지는 문화공간으로 쓰인다. 11일부터는 어린이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4층과 5층은 갤러리다. 밀가루 두 포대가 있는 4층 갤러리에서는 현재 ‘연결-시간을 잇다’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성심당과 얽힌 이야기를 들은 88세의 구술 화가가 연필로 직접 그린 ‘구술(口述) 드로잉’ 작품 100점이 전시돼 있다. 김 이사는 “시간과 시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것이 전시회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지하 1층에 구축 중인 ‘성심당 역사관’은 연말에 문을 열 예정이다.
성심당 문화원 입구에 설치된 종(鐘)에도 성심당의 정신이 담겨 있다. 김 이사는 “도시개발로 철거되는 과정에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성당의 종을 떼어다 놨다가 이번에 문화원 입구에 달았다”면서 “성심당이 늘 소중하게 여기는 ‘에코’와 ‘환경’, 보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다시 쓰는 정신’, ‘버리지 않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성심당 문화원이 재미있는 스토리로 가득 찼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전은 물론 외지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서울·경기·충북 등 전국의 청년 기업가 20여 명이 문화원을 방문, 성심당의 정신에 관해 공부하고 갔다. 당시 방문단에는 일본에서 온 기업가도 포함돼 있었다.
김 이사는 “처음에 문화원을 준비할 때는 멋지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며 “이후 작업을 진행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는 성심당의 본질, 그리고 소박하지만 따뜻함을 담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갔다”고 14일 말했다.